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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약함과 슬픔, 아픔 받아들이기

기자명 재마 스님

혐오·집착 내려놓고 받아들일 때 평온해져

저는 지난 주 암병동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병원에서 봉축행사를 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1년에 한 번 떡과 과일 등의 선물을 정성껏 마련해서 불단에 올린 후 암병동 환자들에게 나누는 행사를 합니다.

우리 삶은 생사·건강·질병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어
부정적 감정·현상 알아차리고
판단 대신 일어난 일 바라봐야

봉축법요식을 마치고 각 병실마다 개별 포장한 선물을 들고 방문을 하는데, 한 병실의 문을 열자마자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침상에 누운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단 남성이었는데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선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기쁜 소식이라도 그분들께는 소용이 없는 것이었지요. 선물을 들고 간 저도 그 가족의 눈물에 전염되어 가슴 한 편이 아려왔습니다. 이별의 아픔을 겪기 시작한 그 가족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부처님오신날 선물을 기쁘게 받고 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연꽃 컵 등(燈)에 불을 밝혀 들고 갔을 때는 병실의 다른 환자들도 입가에 모두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웃을 수 있는 복합적인 것이 삶임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존재여행은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슬픔과 기쁨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함께 맞물려 있습니다. 붓다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이들이 환호하고 기뻐했지만, 그 행복한 시간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인 마야께서 생을 마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모와 유모가 아기를 키웠겠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생의 초기부터 죽음에 대한 사색으로 붓다의 심연 깊은 곳에 자리하지 않았을지 상상해봅니다.  

저는 이날 암이 황달과 뇌, 뼈와 척추에 전이되어 침대 높이를 계속 바꿔주면서 마약으로 통증을 완화시키는 환자를 만났습니다. 이 젊은 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칼이 빠져서 텅 빈 머리를 하고,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감정적으로도 다운된 상태였습니다. 온몸과 눈동자는 황달로 인해 노란색이 짙어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몸이 조건과 환경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분을 보면서 함께 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통증이 극심한 30대 젊은 환자는 제게 “스님, 제가 아픈 것을 어떻게 하면 좀 덜 느끼고 견딜 수 있을까요?”라는 호소를 했습니다. 저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아픈 통증을 제가 경험한 적이 있었는지, 제가 그동안 수많은 환자들에게 이야기해온 말들과 기도, 불법이 이 환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지, 순간적이지만 아주 길게 느껴지는 침묵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이, 견딜 수 없이 아프시죠? 혹시, 숨에다 의식을 집중하면서, 통증을 싫어하는 마음을 내쉬는 숨과 함께 내보낼 수 있을까요?”라는 것이었습니다. “통증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통증에게 화내는 마음을 내 쉬는 숨과 함께 내려놓아 보세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날숨과 함께 아무리 내려놓아도 통증은 한 순간에 잦아들지 않고 다시 찾아옵니다. “통증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머물러 보세요” 저와 함께 숨을 의식하는 몇 분 동안 환자의 숨은 점점 깊어지고, 통증으로 인한 몸부림은 조금 잦아드는 듯 했습니다. 이 짧은 시간동안 붓다께서 가르쳐주신 “집착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수행은 이 청년환자에게 잠시나마 구원이 되었습니다. 이 방법을 통증이 극심할 때마다 수행으로 해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 휑하니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우리는 대상이 나타났을 때 좋은 것을 집착하고 싫어하는 것을 혐오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반응으로 일시적인 행복과 일시적인 고통을 경험합니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우리들의 약함과 슬픔, 고통에 대해서도 싫어해 혐오하거나 좋아해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훈련은 우리를 평온으로 이끌어줍니다.

이번 주 존재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부정적인 감정과 현상이 일어나면, 알아차리고 호불호의 판단을 잠시 유보해보세요. 그것을 그저 바라보고 받아들일 때 어떤 다른 현상이 피어나는지 실험해보시길 권합니다.
 
재마 스님 jeama3@naver.com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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