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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적공간의 하류노인

기자명 심원 스님

가정의 달 5월에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현안인 노인문제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7%를 넘어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고, 통계청 자료(2016년)의 예측보다 1년 빠른 올해 말에는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 2026년에는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 돈 없이 늙고 병들어가는 노인들에게는 축복이 아닌 재앙이다. 노인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문제를 보면 ‘노인빈곤, 노후파산, 독거노인, 노인학대, 노인자살률 증가, 고독사…’ 등 거의가 부정적인 것으로 다른 사회 현상들과 깊숙하게 얽혀 있다. ‘퇴적공간(堆積空間)’과 ‘하류노인’이란 신조어는 이러한 노인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이 신조어들은 그대로 책 제목이 되어 출간되었다.

‘퇴적공간’은 홍익대 미술대학을 퇴임한 오근재 교수가 2014년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 등 노인들의 군집 공간을 탐사하면서 노년이 지닌 고독의 무게와 소외의 실상을 차분하게 성찰한 책이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퇴적공간’에는 두 가지 의미가 겹쳐 있다. 하나는 종묘시민공원 같이 노인들이 모여 있는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교환가치를 상실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래서 사회에서 떠밀려 뒷전으로 물러난 노인들을 뜻하는 ‘위상적 공간’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인된 직업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을 벌지 않는 이상, 나이든 자는 사회적인 잣대에 의해 ‘노인’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가정과 사회에서 자리를 빼앗기고 내몰린 노인들은 지나간 세월을 퇴적층처럼 간직하면서 노인복지센터나 공원에서 고독과 소외를 달래고 있다. 그래서 그곳은 퇴적공간인 것이다.

저자는 개인단위로 지원되는 현재의 복지제도와 정책이 가정과 공동체 파괴를 초래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실례로 아이를 시설에 보내야 더 많은 돈을 지원받고, 노인들도 요양원에 있어야 지원금이 나오니, 여력이 되는 사람들도 모두 시설을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방향을 바꾸어 사회 기본단위인 가정과 공동체에 복지 지원을 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하류노인’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 문제에 직면한 일본의 노인빈곤 문제를 다룬 책이다. 세이가쿠인대학 복지학과의 객원교수인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가 2016년에 내놓은 저술로 ‘1억 인구 노후 붕괴의 충격’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하류노인’은 ’생활 보호 대상 노인 및 그 우려가 있는 노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수입이 거의 없고, 충분한 저축도 없으며 의지할 사람조차 없다. 저자는 약 90%의 일본 노령 세대들이 하류노인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들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의 생활’조차 할 수 없는 고령자다. 국가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고 이들을 방치한다면 일본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한 사회적 참사를 맞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일본의 사회 문제는 몇 년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도 비슷하게 전개된다. 특히 노령화로 인한 사회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률 1위에다 ‘노후 절벽’에 매달린 우리나라에서 ‘하류노인’은 바로 눈앞에 닥친 우리 세대의 일이 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 불교계는 퇴적공간을 부유하는 하류노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노인들을 쓸모없어 폐기되는 잉여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생각을 좀 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경험을 귀중한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다음으로 사찰은 퇴적공간의 또 다른 의미인 ‘비옥한 땅’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으며 하류노인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사찰 활용방안에 대해 사부대중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현재 노인이거나 미래의 노인이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daum.net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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