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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별기’는 후대에 새롭게 재편집된 문헌”

  • 교학
  • 입력 2017.05.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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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 인문한국(HK)연구단(단장 김종욱)은 5월19~20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원효성사 탄신 14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21세기 원효학의 의미와 전망’을 개최했다.

‘대승기신론’이 동아시아 불교계의 대표적 문헌으로 대두된 데에는 그것을 각별하게 여겼던 원효성사의 역할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승기신론별기’와 ‘대승기신론소’는 ‘대승기신론’에 대한 원효성사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 문헌으로 손꼽히며 당대는 물론 현재에도 절대적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학계에서는 ‘대승기신론별기’가 ‘대승기신론소’의 초고적 성격의 글이며 양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의 저술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알려진 ‘대승기신론별기’가 후대에 새롭게 재편집된 문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동국대 HK연구단 학술대회서
최연식 교수 ‘대승기신론’ 발제
‘별기’는 법장 ‘의기’ 영향받아
후대 학인들이 새 내용 삽입

동국대 인문한국(HK)연구단(단장 김종욱)은 5월19~20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원효성사 탄신 14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21세기 원효학의 의미와 전망’을 개최했다. 이는 한·중·일 삼국에서 열리는 릴레이 학술행사의 일환으로 앞서 3월24~25일 중국에서 인민대학과 민족대학 공동주최로 ‘원효와 동아시아불교’ 주제의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두 번째로 열린 이날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한국·중국·일본·미국·독일 등 세계 각국의 석학 15명이 한자리에 모여 원효 문헌과 사상이 불교의 동아시아적 전개 그리고 21세기에 미친 영향·의미를 논의했다.

특히 최연식 동국대 사학과 교수는 ‘대승기신론별기의 성립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대승기신론별기’는 원효성사의 ‘기신론기’를 모태로 하고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 내용을 추가해 새롭게 편집된 문헌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에 눈길을 끌었다. 이는 법장의 ‘의기’가 원효성사 ‘별기’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은 것으로, 오히려 ‘의기’의 영향을 받아 내용을 추가하여 재편집한 문헌이 바로 ‘별기’였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부자연스러운 서술 양태를 꼽았다. ‘별기’가 ‘소’와 달리 본문 중 많은 부분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제시하지 않은 반면 일부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긴 분량을 할애하는 등의 특이한 서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별기’는 소수 특정 부분에 집중한 특이한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몇몇 부분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문장들이 보이고 있다”며 “이는 원래 문장에 새로운 내용이 맥락에 맞지 않게 추가로 삽입되면서 전후연결이 단절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장이 ‘의기’에서 언급한 ‘별기’에 대해서는 원효성사의 ‘별기’가 아니라 법장 자신의 또 다른 저술이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별기’ 가운데 “‘의기’에서 ‘別記(별기)’에 서술됐다”는 내용이 보이는 것도 ‘별기’의 재편찬자가 ‘의기’에서 ‘별기’를 언급하는 문장에 주목하고 그 내용을 추가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별기’는 ‘의기’에서 언급한 ‘別記’가 아님에도 그와 관련된 내용이 수록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의 ‘별기’가 후대에 재편집됐음을 보여주는 근거라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이러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별기’를 ‘기’가 재편된 것으로 분석했고 재편시기는 법장의 ‘의기’가 편찬된 690년에서 원효성사의 ‘별기’가 일본 동대사(東大寺)의 사경문서에 처음 보이는 744년 사이로 추정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원효성사가 입적한 687년 이후에서 동대사 사경문서에 기록된 원효성사의 ‘별기’를 일본에 가져간 심상(審祥) 스님이 신라에 유학했던 720~730년 사이로 봤다.

최 교수는 “기존 ‘기’가 ‘별기’로 재편집된 배경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법장 사상의 영향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일부 학인들 사이에서 원효성사와 법장의 ‘기신론’ 이해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생겨났고, 그것이 ‘소’의 출현 이후 사람들의 주목에서 사라졌다가 ‘기’에 법장의 사상과 부합되는 내용을 추가하여 재편집하는 형태로 ‘별기’가 나타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최 교수는 “8세기 중엽 이후 신라와 일본 불교계의 중요한 동향 중 하나로 원효와 법장의 사상이 융합된 형태가 제시됐다”며 “‘별기’는 그러한 원효·법장 융합형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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