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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이디푸스 ②

기자명 김권태

무명에서 비롯된 생사윤회는 무의식의 춤사위

오이디푸스가 다가가자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내었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짐승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오이디푸스는 “그것은 사람이다.”라고 대답을 했고, 당황한 스핑크스는 높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

스핑크스 젖먹이 유아의 엄마표상
‘우울 자리’ 넘어가는 애도과정은
소중한 대상 상실의 상처 극복 후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힘 길러줘

스핑크스(Sphinx)는 ‘목을 졸라 죽이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테베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풀지 못하면 목을 졸라 죽이고 잡아먹었다. 그는 어떤 경계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머리와 몸통은 가슴 달린 여자, 손발은 큰 발톱이 달린 사자로 어깻죽지에 날개가 달린 괴물이다.

이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무의식 속의 환상으로 읽어보면, 스핑크스는 젖먹이 시절 유아의 엄마 표상을 나타낸다. 젖먹이 아기에게 세상은 전적으로 좋거나 전적으로 나쁜 것으로 분열되어 인식되는데, 자신의 욕구를 충실히 채워주는 엄마는 풍만한 가슴의 날개 달린 천사가 되고, 자신의 욕구를 반영해주지 않거나 지연시키는 엄마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무서운 괴물이 되는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이렇게 대상(엄마)을 부분 인식하여 양극단으로 나누는 경험양식을 ‘편집-분열 자리(paranoid-schizoid posi tion)’라고 하였고, 젖을 뗄 무렵 대상의 좋은 특성과 나쁜 특성을 통합해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경험양식을 ‘우울 자리(depressive position)’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평생 동안 이 두 개의 자리를 옮겨 다니며 불안에 대처한다고 주장하였다.

‘편집-분열 자리’에서 유아는 자기가 곧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멸절불안과 자신의 파괴적 공격성이 투사된 박해불안을 견뎌내기 위해 원시적 방어기제인 분열과 전능환상으로 세상을 통제하려하고(이때는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이 최대한 분리되어야 한다. 만약 이 두 대상이 분리되지 않고 혼동되면 좋은 대상은 나쁜 대상에게 파괴되어 유아가 나쁜 대상으로부터 보호받을 곳이 없게 된다), ‘우울 자리’에서 유아는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이 하나의 다른 모습임을 깨달아 그간 자신의 공격성으로 인해 사랑하는 대상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죄책감을 느끼며 우울불안에 휩싸이고 이 전체 대상을 향해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느끼며 서서히 양가감정을 통합해간다.

즉 스핑크스는 좋음과 나쁨, 천사와 괴물로 분열된, 젖먹이 유아의 부분 지각된 엄마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차츰 규범과 언어의 습득으로 사회화된 아이는 인간의 성장단계를 상징하는 수수께끼를 이해하고 풀어냄으로써 과거의 ‘스핑크스 엄마’와 결별하고, ‘엄마-아빠-나’라는 새로운 삼자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때의 엄마는 나와 융합된 전능한 이자관계의 엄마가 아니라, 성차를 지각한 아이에게 사랑과 경쟁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차원의 엄마가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를 수용하기 이전의 원시인의 사고 흔적이며, 도덕과 윤리 이전의 심리발달단계에 해당하는 유아의 환상과 욕망에 대한 잊힌 무의식적 기록이다.

아기는 멸절불안과 박해불안 등 감당하기 힘든 죽음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부분지각과 분열 방어기제를 사용하고(편집-분열 자리), 정신적 성장 이후 전체지각과 양가감정을 소화해내며 밀려오는 우울불안을 직면한다(우울 자리). 이때 ‘편집-분열 자리’에서 ‘우울 자리’로 넘어가는 발달과정이 곧 애도의 과정이며, 이러한 과제의 수행은 소중한 대상을 잃은 상처를 극복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애도하여 다시 현실에 나올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신화에는 죽음공포로 비롯된 분열된 무의식과 도덕적 금기와 처벌로 비롯된 억압된 무의식이 겹쳐있다. 의식 저편에 숨어 우리가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적 충동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현실로 재연되어 있는 것이다. 무명으로 말미암아 펼쳐지는 고단한 생사윤회의 이야기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거대한 무의식의 춤사위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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