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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내 몸에선 무슨 냄새가 날까

기자명 조정육

자비롭다면 허름하게 입어도 향기가 난다

▲ 이수영, ‘여자라서 햄 볶아요’, 120×190cm, 장지에 채색, 2009 : 많은 사람들이 목욕탕에서 씻고 닦는다. 샴푸를 하고 바디워시로 거품을 내어 몸을 닦는다. 뜨거운 욕탕 안에 들어갔다 나와서 또 다시 비누질을 하여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몸을 거듭거듭 씻고 닦는다. 그러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목욕만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도 목욕하듯 자주 닦아줘야 한다. 씻지 않은 생각은 몸에서 나는 냄새보다 더 고약하다.

시어머니와 떠난 여행 통해
생로병사에 대해 다시 생각
냄새는 음식에서도 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

독한 마음서 나쁜냄새 나듯
자비로운 마음선 좋은 향기

“아, 구수한 냄새!”

병실을 청소하러 온 아줌마가 문을 열자마자 감탄사를 터트린다. 입원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우리는 사소한 대화도 자주 할 정도로 친숙해졌다.

“커피 냄새예요. 설탕 넣지 않은 원두커피인데 한 잔 드릴까요?”

나는 커피를 좋아해 집에서 원두커피를 분쇄해왔다. 로스팅한 커피는 입원 직전 배달받아 신선도를 유지했다. 핸드드립 주전자와 드립퍼, 필터기까지 가져왔다. 긴긴 시간 병원에 갇혀 있다 보면 아무래도 지루할 것 같아서였다. 설령 먹지 못한다 해도 커피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쯤 하나 있어야 지루함을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입원 기간이 어느 정도일지 몰라 생각한 아이디어였다. 

“얻어먹기가 황송해서….”
“아유, 아닙니다. 마침 커피를 많이 내렸어요.”
“그럼 저는 연하게 해주세요. 진하게 마시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나는 방금 내린 커피를 뜨거운 물에 희석시켜 아줌마한테 드렸다. 그녀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지 않을 정도로 연한 커피였다. 그러나 아줌마에게는 딱 맞는 강도였던 모양이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연신 맛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커피를 마시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병실이 넓은데도 문 열 때 커피 냄새가 나던가요?”
“그럼요. 방마다 다 다른 냄새가 나요.”
“아무래도 담배 핀 남자가 입원한 방이 냄새가 더 많이 나지요?”
“그럼요. 말도 못해요. 그렇다고 환자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제가 에둘러서 얘기를 해요. 환기도 시킬 겸 가끔씩 창문을 열어두시면 건강에 좋다고요. 그래도 못 알아먹어요.”

청소아줌마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작년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남편에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구례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되신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내 나름대로는 크게 마음을 낸 결과였다. 벚꽃 피는 봄날이었다. 나는 시어머니가 차 안에서 마음껏 벚꽃을 구경할 수 있도록 특별히 아들 옆자리에 앉게 해드리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차가 한참 달리자 날씨가 더운 듯 시어머니가 앞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상한 냄새가 확 풍겼다. 누린내 같기도 하고 썩은내 같기도 한 것이 도무지 파악하기가 힘든 냄새였다. 특히 냄새에 민감한 나에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약했다. 밖에서 들어온 논밭의 거름냄새일까 생각해봤는데 그 냄새와는 조금 달랐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냄새였다. 시어머니가 창문을 닫고 나서야 알았다. 시어머니 몸에서 나는 냄새라는 것을. 시어머니가 창문을 열자 앞좌석에 앉은 시어머니의 냄새가 뒷좌석에 앉은 내게 그대로 날아온 것이다. 평소 시댁에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지만 집이 오래된 빌라 1층이라 곰팡이 냄새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집에 사람의 냄새가 배어서 생겨난 냄새였다. 다만 그 냄새가 음식냄새나 빨래냄새 등과 섞여 잘 드러나지 않아서 몰랐었다. 그런데 차 안이라는 밀폐된 공간에 두세 시간을 함께 있다 보니 적나라하게 맡게 된 것이다. 벚꽃이 핀 아름다운 길을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냄새를 견디는 것은 힘들었다. 내가 괜히 큰며느리 노릇하겠다고 자청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모처럼 아들내외와 함께 여행하기로 했으면 깨끗이 목욕이라도 하고 오실 것이지 그냥 오신 시어머니를 두고두고 원망했다. 그 냄새가 목욕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이튿날 아침에 목욕을 깨끗이 한 시어머니 몸에서 여전히 어제와 똑같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많이 놀랐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세포가 죽어가는 냄새가 날까. 생로병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여행이었다.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든 사람들 냄새가 훨씬 더 심하지 않아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젊은 사람 중에서도 유독 심하게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어요. 젊다 보니 여자들 같은 경우에는 얼마나 자주 씻고 닦고 하겠어요. 그런데도 그 방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냄새가 고약해요. 냄새나는 사람들 특징이 자기 냄새를 못 맡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곁에 있는 사람이 문제지요. 오죽하면 부부가 냄새가 싫으면 함께 못 산다는 말이 나오겠어요. 청소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애로사항이 많아요.”

푸념 같은 말을 끝으로 묽은 커피를 다 마신 그녀가 병실을 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에도 오랫동안 그녀가 한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냄새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곁에 있는 사람이 힘들다는 말이 특히 잊히지가 않았다.

냄새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먹는 음식에서 온다. 각 나라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다른 이유도 음식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게 전부일까? 음식만으로는 비슷한 음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서로 다른 냄새가 나는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냄새의 원인은 음식 외에도 그 사람이 하는 일과도 연관이 있다. 어느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게 전부일까?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의 생각이고 마음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남을 해치려는 독한 마음을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좋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있어도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결국 냄새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혹은 지금까지 살아온 전 생애를 드러내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나한테 나는 냄새는 어떤 냄새일까. 주변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면서 나만 모르는 냄새일까. 아니면 커피냄새처럼 지나가는 사람도 끌어당기는 향기로운 냄새인가.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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