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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미야모토 무사시의 허심(虛心)

“검술 수련은 두려움 떨치고 잡념 비우는 것”

▲ 그림=근호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1645)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무라이(侍, 검객)이다. 그는 다이묘(大名, 영주)에게 고용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나름의 길을 갔다. 평생에 예순 번의 결투를 벌여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그의 일생은 치열했고, 나름 순수했다.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무라이
검술보다 정신적 측면 더욱 특별
부동명왕에 귀의하고 검술로 수행
수행이라는 무기로 탐진치 죽여야

당연히 그는 검술가로서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정신 면에서 더욱 특별했다. 그는 심리술의 대가였다. 상대의 자만심을 자극하여 흥분시킴으로써 허점을 노출시키기도 했고,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예상하지 못한 시각에 갑자기 나타남으로써 상대를 놀래키거나 진이 빠지도록 했던 것이다.

무사시가 활을 깎고 있을 때 곤노스케라는 사무라이가 찾아와 한 수 배우기를 청했다. 상대의 차림새가 요란한 것을 보고 무사시는 그가 과시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여덟 자 짜리 장(杖)을 무기로 사용하는 곤노스케에게 무사시가 말했다. “봉술이로군.” 상대는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봉술이 아니라 장술이오.” 무사시는 깎고 있던 활 토막을 들고 그와 20보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두 사람 간의 거리가 좁혀졌을 때 무사시가 다시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거야 원, 평범한 봉술이로군.” 화가 치민 곤노스케가 공격해왔다. 상대의 공격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던 무사시는 자신이 ‘대(待)의 선(先)’이라 이름 붙인 그 순간의 빈틈을 파고들어 곤노스케의 이마를 내리쳤다.

벌렁 넘어진 곤노스케는 핏기 가신 얼굴로 한동안 꼼짝하지 못했다. 무사시는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곤노스케는 절반쯤 의식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흡만은 고요했다. 이제껏 갈고 닦은 실력이 호흡을 붙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감탄한 무사시가 그를 일깨우며 말했다. “끝났소. 방으로 들어갑시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떠돌이 무사인 아버지에게 무사시가 빈정대는 말을 했다. 성정이 불 같았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이쑤시개를 깎고 있던 칼을 던졌다. 아들은 칼을 슬쩍 피하고는 빙글빙글 웃었다. 더욱 화가 치민 그의 아버지는 다른 칼을 던졌다. 아들은 잽싸게 칼을 피한 다음 후닥닥 방을 뛰쳐나와 외갓집으로 도망쳤다.

이런 모험적인 성정이 그로 하여금 열세 살 때 결투를 벌이도록 했고, 그는 그 결투에서 상대 검객을 죽였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서른 살을 넘겼을 때, 그는 조심성 깊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서예를 익혔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자신의 무기를 직접 만들었다. 그는 나무를 새겨 조각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부동명왕(不動明王)을 즐겨 조성했다. 그가 부동명왕을 깎고 있는 걸 보고 절의 주지인 인에이(胤榮)가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온화한 보살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
“저는 오로지 부동명왕만 좋아합니다.”
“부동명왕은 내부의 힘이 외부로 표출되어 분노하는 형상을 하고 있지. 검객들의 귀의불이 될 만하고말고.”
“부동명왕은 무얼 의미하나요?”
“‘고요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

어느 때 한 검객이 검술 대결을 쉽게 말하자 그는 시중드는 아이를 부르더니 아이의 머리 위에 밥알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긴 칼을 들어 높이 치켜든 뒤 번개처럼 내리쳤다. 검객이 살펴보니 밥알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파랗게 겁에 질린 검객을 향해 무사시가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런 솜씨를 갖고 있지만 시합을 쉽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네.”

그의 표정은 부동명왕의 분노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심정은 검선일여(劍禪一如)의 ‘고요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검술과 함께 선을 수행했고, 좌선 자세로 죽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무사시에게 검술 수련에 대해 묻자 무사시는 땅바닥에 깔린 다다미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에게 걸어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무사시가 물었다.

“당신이 걸은 언저리 폭만큼의 넓이로 다리가 하나 있다 칩시다. 그 높이는 여섯 자 정도입니다. 건널 수 있겠습니까?

여섯 자 높이에서 발바닥보다 좁은 폭의 다리 위를 걸을 수 있을지 손님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가 대답하기를 망설이자 무사시가 다시 물었다.

“다리의 폭을 석 자로 늘리면 어떻겠습니까?”
“그 정도라면 건널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다리가 성 꼭대기에서 맞은편 산꼭대기로 높이 걸쳐져 있다 칩시다. 건널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무사시가 결론을 내렸다.

“다리의 폭은 똑같은데도 건너지 못하는 것은 잡념 때문입니다. 두려운 생각이 끼어드는 거지요.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 잡념을 비우는 것이 검술 수련입니다.”

부동명왕은 중국·한국·일본 불교에도 있지만 티베트 밀교에서 특히 존숭되었다. 동자(童子) 얼굴을 한 그는 수행자를 보호하고 마중(魔衆)을 멸망시켜 수행을 성취시킨다. 부동명왕은 머리카락을 왼쪽 어깨로 묶어 내리고 두 눈을 부릅뜬, 혹은 왼쪽 눈을 흘겨보며 아랫니로 윗입술을 깨물고 눈썹을 찌푸려 이마에 주름이 잡힌 모습으로 조성된다.

그는 분노의 신이자 좋은 수행자이다. 그는 화생삼매(火生三昧)에 들어 분노를 발한다. 분노가 원인인 화병(火病, hwa-byung)이라는 우리말이 세계인의 의학용어가 되어 있지만 그의 분노는 질병으로서의 분노가 아니라 깨달음을 돕는 분노이다.

부동명왕이 삼매에 들어 있다는 것은 그의 내면이 고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삼매의 고요함을 분노로써 표출한다. 사리불 존자는 불교의 극치인 열반을 ‘탐진치(貪瞋癡)의 소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밀교가 포함되는 후기 대승불교에서는 진심(瞋心)조차도 열반을 돕는 요소가 된다.

부동명왕의 오른손에는 검, 왼손에는 삭(索)이라는 무기가 들려 있고, 미야모토 무사시는 여러 종류의 무기를 들고 남과 겨루었다. 수행자는 수행이라는 무기를 들고 자신 안의 적인 탐진치를 죽이는 사람이다. 수행의 완성자를 의미하는 아라한(arhat)이라는 말은 살적(殺賊), 즉 ‘적(ar)을 죽인(hat) 자’를 의미한다.

수행자가 벌이는 내적 전투에서 진(瞋)을 죽이는 진(瞋)이 필요하다고 부동명왕 상(像)이 우리를 향해 호통 친다. 번뇌에 시달리는 나를 꾸짖는 분심(忿心)의 그 호통 소리에 문득 분심(憤心)이 일어난다. 그 분심을 수행의 자양분으로 삼는 불제자에게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한 잡념을 비운 허심(虛心)의 경지는 열릴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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