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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환 교수를 위한 염원

2015년 뇌출혈로 의식불명
불교문헌학 정착시킬 학자
가피 주인공 되기를 발원

박창환(50) 금강대 불교학부 교수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은 2015년 11월9일이었다. 밤늦도록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새벽 3시30분께 돌연 의식을 잃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년 반이 넘도록 심연과 같은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박 교수의 회복을 바라는 이들의 탄식도 깊어지고 있다. 길을 걷거나 책을 펼치다가도 그가 떠오르면 울컥한다는 동료교수도 있고, 슬픔을 넘어 화가 난다는 선배학자도 있다. 아직 젊고 해야 할 일이 많은 그가 왜 이렇게 됐는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아비달마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구 성과들을 내고 있는 중진학자다. 불교원전 언어인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한문을 비롯해 영어, 일어, 독어, 불어에도 능한 박 교수는 불교문헌 연구의 기본기를 탄탄히 갖춘 드문 학자로 꼽힌다. 이러한 능력은 무수한 낮과 밤을 원전과 씨름해온 인욕바라밀의 정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86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한 그가 처음부터 불교학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동서양 철학을 두루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레 불교로 관심이 옮아갔고, 나중에는 불교에서 자신의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대학원에서 ‘초기불교의 연기중도적 사유체계’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불교사본 연구 권위자인 파드마나브흐 자이니 교수가 있는 미국 UC버클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구사론’을 비롯한 아비달마 문헌 연구를 본격화했다. 아비달마가 모든 불교철학의 이론적 토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년간 일본 오타니대학 연구원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2007년 가을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비달마를 다룬 ‘경량부 종자설 재검토’라는 제목의 학위논문으로 치밀한 문헌연구와 성실함이 일궈낸 성과였다. 이 논문은 2014년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발간하는 ‘티베트와 불교학(Tibetan and Buddhist Studies)’ 시리즈의 84번째 책으로 출판됐다. 표지 색깔로 인해 ‘오렌지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티베트와 불교학’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는 불교학술서로 이곳에서 책이 출간된 자체로 세계적인 학자로 평가된다.

귀국한 박 교수는 2008년 3월 불교문화연구소의 HK연구사업에 참여하면서 금강대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교수가 된 이후에도 밤잠을 줄여가며 연구에 몰두했고, 매주 금요일에는 서울에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원전언어와 사본을 익힐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지도해왔다. 문헌을 자유롭게 다루고 비평할 수 있을 때 우리 불교학은 비로소 우리만의 사상적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신념에서였다.

▲ 이재형 국장
박 교수는 불교문헌 연구가 빛 한 줌 들지 않는 깜깜한 갱도에서 탄을 캐는 광부의 삶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원전강독과 번역이 우리 힘으로 이뤄질 때 학문의 종속성을 극복할 수 있는 주체적 자신감과 판단력도 창출된다고 보았다.

박 교수가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학문 활동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마지막 희망까지 놓을 일은 아니다. 불경에는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위신력과 가피에 대한 얘기가 수도 없이 많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박 교수가 이제 그 가피의 주인공이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한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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