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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차로 맺어진 조선 유불 인연[br]스님과 선비의 교유이야기로 풀다

  • 불서
  • 입력 2017.05.29 14:31
  • 수정 2017.05.2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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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불교를 만나다’ / 박동춘 지음 / 이른 아침

▲ ‘조선의 선비, 불교를 만나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이들끼리 마주 앉으면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죽마고우들이 오랜만에 만나도 옛 추억을 길어 올리고 오늘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밤새 주고받는 말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서로 통하는 것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 교분이 두터운 이들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호계삼소(虎溪三笑)’는 종교를 넘어선 교유의 표상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중국 진나라 혜원법사는 여산 동림사에 살면서 산문 밖 출입을 금하고 수행을 굳건히 하려는 마음에 절 앞을 흐르는 호계를 넘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그리고 스스로 엄격하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인 시인 도연명과 도사 육수정을 배웅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호계의 다리를 지나치고 말았다. 혜원이 자신의 마음 속 맹세와 지금의 현실을 두 벗에게 털어놓은 후 세 사람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는 데서 유래한 고사가 바로 ‘호계삼소(虎溪三笑)’다.

이렇듯 자신의 맹세까지 잊고 이야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이상과 지향하는 목표가 같고 세속의 기운이나 꾸밈이 사라진 순수 그 자체를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호계삼소의 주인공들이 아니더라도 종교를 넘어 불교와 유교의 교유는 긴 역사를 이어왔다.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억불시대였던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건국 후 유불의 교유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대치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학문의 지혜를 갈고 닦던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교유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념적인 갈등으로 인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폐해가 컸던 시대일 뿐이다. 조선시대 불교가 정치, 사회적으로 힘을 잃어갔음에도 수행승들은 수행의 의지를 잃지 않았다. 저자에서 산으로 간 수행승들은 수행에 대한 의지가 더욱 강성해졌고 여가시간에 시를 짓고, 차를 즐겼다.

백척간두에서 수행에 여념 없던 스님들은 자신의 속 깊은 마음을 시어에 의탁했고, 때론 자신의 시를 적은 두루마리 말미에 발문을 받기 위해 당대 이름 높은 선비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반대로 수많은 선비들이 갓을 쓴 채 사찰을 드나들고 스님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고 밤을 새워 시와 학문을 토론했다.

숭유억불시대에도 탈속과 해탈을 꿈꾼 유학자들이 그만큼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유불의 교유는 같은 조선시대에서도 전기·중기·후기에 따라 조금씩 양상이 달랐다.

이 책 ‘조선의 선비, 불교를 만나다’는 서로 다른 이념과 철학을 추종하던 불가와 유가의 인연이 어떻게 이어졌는가를 조선시대 대표적 선비들을 중심으로 살폈다. 초의차의 이론과 제다법을 이어 받은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조선시대 사찰을 드나들며 불교와 교유의 끈을 놓지 않았던 36명의 선비들을 통해 그 과정을 옮겼다.

조선후기의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다룬 1부에서는 추사 김정희, 다산 정양용 등 15명의 선비들이 등장하고, 조선중기 유학자들을 살핀 2부에서는 동악 이안눌 등 17명이 출연한다. 그리고 조선 전기에는 단 4명의 선비만 등장해 숭유억불이 시작된 초기에 그만큼 교유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 시 이외에 유불의 교유를 가능하게 하고 지속시켰던 중요한 매개 중 하나는 차였다. 다산과 초의, 초의와 추사의 인연이 대표적이다. 차를 통해 인간적으로 가까워졌고, 인간적으로 친분이 형성되면서 정신적으로도 동지애를 구축한 이들이다. 비록 추구하는 이상은 달랐어도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미덕이 쌓였고, 배려와 이해의 바탕이 됐던 것이다.

‘조선의 선비, 불교를 만나다’는 이처럼 유교와 불교의 상호 교유를 이어갔던 선비와 스님들 이야기다. 이들의 삶을 통해 조선시대 유불의 상호작용을 살필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들의 만남에서 드러나는 두 사상과 철학의 접점을 통해 진정한 삶의 자세가 어떠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갈등과 반목이 심각한 이 시대, 서로 다른 다양성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근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1만8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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