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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행일기]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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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30  10: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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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8, 무심
한 때 무속신앙에 빠졌던 난, 이제 당당한 불자다.

아도화상 창건도량 인연
한때 무속신앙에 빠졌다
디지털대학과 만나 공부
포교사로 제2 인생 도전


그림처럼 아름다운 섬진강 상류 인근 시골마을, 1960년 12월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다. 주위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 태어났다. 공무원 생활을 하시던 자상하고 배려 깊은 부모님의 4남1녀 중 장녀였다. 시골이지만 부족함이 없는 유복한 가정에서 집안어른들 사랑을 듬뿍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4개면에 한 곳 뿐인 중학교에 들어가 12km가 넘는 비포장 신작로를 버스 타고 통학을 했다. 이 시절에 내 기본적인 인격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버지 영향이 컸다.

학교 도서관에 수많은 책을 대여해 보시던 아버지 영향으로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 읽었던 책들은 줄잡아 1000여권 정도 된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때처럼 독서량이 왕성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때 읽었던 책들이 마음의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고교 시절에는 교육도시 광주로 유학을 오게 돼 부모님과 떨어져 광주 할머니 댁에서 학교생활을 했다. 입학 전 처음 학교를 방문 했는데 석양에 방문했던 학교 교정에 울려 퍼지던 가야금 선율에 매료되어 가슴이 뜨겁게 떨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입학을 하자 공부보다는 곧바로 가야금과 국악에 푹 빠져 꿈 많은 여고시절은 그렇게 보냈다.

그러나 갑자기 기울어진 집안사정으로 치열한 대학시절을 보낸 후 직장생활을 한 뒤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 후 슬하에 1남1녀 자녀를 낳아 두 아이의 엄마로 육아에 전념했다. 종교의 필요성을 느껴 가톨릭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독실한 불자인 딸의 친구 엄마와 구기동 관음사를 가기도 했다. 부처님오신날 꽃꽂이 봉사 때문에 찾았다. 하루종일 봉사한 뒤 주지스님과 차담을 나누는데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난 세상이 다 아는 불교집안의 딸이다. 아버지가 절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아도화상이 창건한 도량인 보성 대원사에 요사채를 시주하기도 했다. 주지스님이 할아버지 방에 묵으며 장기나 바둑을 두며 지내시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무속에 빠졌다.

결혼 뒤 남편과 사이는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남편이 가정을 등한시했다. 가정은 바람 앞에 등불 같았다. 내 생활이 엉망진창이 됐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을 한 탓에 좁혀지지 않은 견해와 무분별한 남편의 사회생활에 난 지쳐갔다. 절망하며 고통스럽게 보내다 무속신앙에 빠지게 됐다. 그들에게 의지하면서 내 생활은 점점 피폐해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결혼하면서 마음을 의지했던 가톨릭으로 돌아갈까 잠시 생각했다. 그때, 도반이 된 친구가 나타났다. 날 처음 절에 데려갔던,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북부총괄팀장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그 한 마디가 나를 살렸다. 이상하게 울림이 컸다. 2013년이었다.

대대로 불교집안이라고 해도 기도문 하나 외우지 못했던 나였다. 종교난에 불교라고 써도 늘 허전했던 시기였다. 불교대학에서 기초교리를 공부하고 체계적인 공부의 시작으로 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고 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인터넷에서 기초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에 등록해 신도기초교리부터 신도전문과정을 마쳤다. 22기 포교사고시에 응시해 합격했고, 예비포교사로서 연수 중에 있다.

지금 귀의함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인의 소개로 한 스승을 만나게 됐다. 불교 윤회설에 의거해 몇 천년 세월 속에 윤회되는 ‘나’는 사람의 몸을 빌었을 때 깨달음을 성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스승을 만난 행운도 찾아왔다. 무심이라는 불명을 받았을 땐 정말 원 없이 통곡했다. 너무 어지러웠던 마음 때문이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매일 ‘천수경’과 ‘관세음보살 보문품’ 그리고 ‘금강경’을 완독한다. 선망부모와 유주무주 떠도는 영가들에게 법보시를 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한다. 부지런히 매일 정성스럽게 독송하면서 불보살님 가피를 얻고 윤회를 거듭하면서 지었던 수많은 업장과 원한을 풀며 견성하는 그날까지 화두를 놓치지 않겠다.

공동기획: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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