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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최호승 기자의 문인을 만나다
10. 남지심 작가“내게 손 내민 부처님처럼 누군가의 손잡고 다독이리라”
최호승 기자  |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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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5  1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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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속의 큰 별 명성’남지심 지음/ 불광출판사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묵화’)

1980년 ‘솔바람~’으로 등단
현대불교문학 1세대로 활동
밀리언셀러 소설 ‘우담바라’
세간에 불교 알린 수작 평가

인생 방향 찾으려 15년 방황
‘화엄경의 세계’ 읽고 환희심
생의 가치 보살에서 찾은 뒤
첫 장편원고 들고 108배하며
“불교문학 하겠다” 서원 세워

큰스님 가르침 기록 남기고자
청화·한암·명성 스님 등 평전
후배 불교문학작가 양성 매진
성보 스토리텔링 글쓰기 추진
‘통일숲~’으로 탈북민 돕기도


저무는 해가 사립문 그림자 길게 드리운다. 논밭 갈며 하루 소임 마친 소는 큰 눈 껌벅이며 마른 목을 축인다. 여물 되새기며 주린 배도 달랜다. 함께 고생한 할머니가 애처롭게 늙은 소를 바라본다. 소 목덜미에 주름진 손 하나 얹고 다독인다.

김종삼 시인이 심우도 보고 쓴 시 ‘묵화’다. 같을 여(如)에 밝을 량(亮)을 법명으로 쓰는 작가의 삶과 닮았다. 소처럼 고단한 삶에 불쑥 찾아온 부처님 손길로 위안 받았던 그녀다. 그리고 자신의 손 내밀어 기댈 곳 찾는 이에게 내미는 그녀다. 문학이, NGO활동이, 탈북민 돕기가 세간출세간으로 내민 그녀의 손이다. 다독거림이자 함께 걷자는 동행의 몸짓이다. 관세음보살의 천수는 아닐지라도 남지심(74, 여량) 작가의 손은 그랬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의 가치를 묻던 질문이 10대 소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헤매고 헤맸다. 소녀는 32살이 됐다. 부처님이 내민 손은 15년이 지나서야 볼 수 있었다. ‘화엄경의 세계(이원섭 역· 현암사)’였다. 다마키 고시로의 ‘화엄경’ 해설을 고 이원섭 선생이 알기 쉽게 번역한 불서였다. 첫 장부터 몰입했다. 보살이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를 넘어 성불에 이르는 여정을 담은 ‘십지품(十地品)’에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인생을 살아갈 답이 없으면 삶의 의미가 없었어요. 인생이 뭔지 알아야 했는데 몰라서 방황했어요. 답을 찾고자 애를 많이 썼어요. 스승을 만나려 했고, 책도 많이 읽었지요. 그러다 우연인지 숙연인지 ‘화엄경의 세계’를 만났는데 답이 여기 있었어요. 바로 ‘십지품’에 나오는 보살의 완성 과정에 몸과 마음이 빨려 들어갔지요. 굉장한 환희심이었어요. 어찌나 집중해서 읽었는지 집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온 집안에 향내도 가득했고. 불교를 위해서 목숨도 바칠 수 있을 만큼 강렬했어요.”

“내가 불자였구나….”

남지심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래도 문학이 인생 목표는 아니었다. 고교시절 시화전과 문학의 밤에 꼬박꼬박 참여했고, 이화여대 졸업하고 문학모임에 나가던 수준이었다. 소설 쓰는 방법도 몰랐다. 답을 찾아서일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보름 만에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유일한 여류작가 등용문이었던 ‘여성동아’ 제13회 여류장편소설 공모에 출품 전 부처님부터 찾았다. 서울 조계사 법당에서 108배하며 서원했다. “평생 부처님 글 쓰겠습니다.”

‘솔바람 물결소리’는 당선됐다. 당시 인기 여성잡지 ‘여성동아’ 부록으로 세상에 나왔다. 나병환자의 자식 혜강과 그를 키우는 한없이 청정한 마음의 다솔 스님, 어머니에게서 핍박받고 자란 소년 덕이, 이들과 함께하는 국어교사 강기혜의 이야기는 세상을 감동시켰다. 부록만 8쇄를 찍었고 2년 뒤 정식으로 출판된 후에는 43쇄를 기록했다. 속편 ‘연꽃을 피운 돌’ 역시 39쇄를 찍었다.

“‘솔바람 물결소리’를 쓸 때 36살이었는데, 주인공 강기혜를 폐암으로 죽게 한 뒤 30년이 지나 나도 폐암 수술을 받았어요. 폐암 판정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솔바람 물결소리’였어요. 뿌린 씨를 거두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죠. 그 당시 주인공이 죽으니 소설에 등장했던 아이들이 고아처럼 버려진 느낌이어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연꽃을 피운 돌’을 썼죠.”

문단에 이름 알리자마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남지심은 잠깐 소설과 멀어졌다. 경제적 어려움 탓이었다. 데뷔작 KBS ‘고교생 일기’는 손창민, 조용원, 강수연, 윤유선, 이청, 최재성, 채시라, 하희라 등 유명배우의 등용문이 되는 등 드라마 작가로서 변신에 성공을 안겨줬다. 수입은 많았던 반면 1주일에 6일분 대본을 써내야하는 작업을 3년6개월 하면서 고갈된 자신을 느꼈다. 소설이 간절해졌다. 그때 집필한 소설이 대표작 ‘우담바라’다.

   
▲ 남지심 작가는 보살의 길을 동경한다. 그처럼 살려고 애쓴다. 후배 예술가들과 도움 필요한 이들에게 이미 어머니 같은 존재다.

태산 같은 생의 무게를 이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썼다. 진흙 구덩이서 한 송이 연꽃 피우듯 살아가는 슬프고 아름다운 인생을 그렸다. ‘도가다의 종’을 1권으로 ‘먼 비구니의 길’ ‘마니주를 찾아서’ ‘황금전당’ 등 4권이 속속 출판됐다. 남지심은 4권의 책에 3000년 만에 한 번 꽃피우는 ‘우담바라’를 제목을 정했다. 600만권이 팔렸다. 1주일에 1만5000부씩 찍었다. 작가 직인을 직접 찍던 시절 팔이 아파 찍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영화로도 제작돼 세간에 불교적 사유를 널리 알렸다. 한 스님은 “우담바라 단어를 소개한 것만으로도 큰 공덕”이라고 격려했다.

“소설기법을 배운 적도 없고, 솔바람과 연꽃이 베스트셀러지만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어요. 솔바람과 연꽃은 1인칭으로 썼는데 3인칭으로 쓰려니 굉장히 서투르고 어색했죠. 몇 년에 걸쳐 썼어요. 큰 사랑을 받아 다행이고 불교를 알릴 수 있어 더 기뻤어요. 이후 다른 소재로 써도 비슷할 것 같아 잠시 소설 집필을 하지 않았죠.”

남지심의 시선은 한 사람의 인생에 가 닿았다. ‘자비의 향기 육영수’ 이후 ‘청화 큰스님’ ‘평전소설 한암’ ‘구름 속의 큰 별 명성’으로 이어졌다. 법명을 준 청화 스님, 유발상좌로 40년 가까이 모신 명성 스님,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한국불교의 거목 한암 스님이 남지심 마음에 담겼다 글로 표현됐다. 부담도 됐지만 스님들 삶을 정리할수록 존경심이 깊어졌다. 사심 없고 겉과 속이 똑같은 명성 스님, 처음 뵀을 때 너무 청빈하고 아름다웠던 수행자 청화 스님, 한국불교를 일제강점기와 전쟁에서 건진 고결한 한암 스님….

“명성 스님은 지근에서 모셨는데 털어 먼지 하나 안 나는 스님이세요. 곡성 태안사서 뵀던 청화 스님의 청아한 모습에 한 달에 한 번씩 꼬박 친견했죠. 오대산에 주석하시면서도 바깥 세상에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았던 선승 한암 스님이 존경스러워요. 그릇이 작아 다 담지 못해 죄송하지만 그렇게라도 세상에 스님들을 알리고 싶었어요.”

남지심은 문학이라는 장르로 불교 대중에 알릴 후배들에게 손을 내밀어 다독이고 있다. 일생을 불교문학으로 살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드는 셈이다. 스토리텔링 전문교육원 ‘바띠(batir, 글이나 집을 짓는다)’다. ‘바띠’는 사찰, 문화재, 역사, 설화 등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는 작가들의 모임이자 글 공양을 위한 전문교육기관이다. 2012년 5월 교육원 설립 이후 문화재청에 등록된 예비사회적기업이기도 하다. 여기서 등단한 작가가 대여섯이나 된다.

“불자 작가들이 나서서 북한산 봉우리에 깃들어 있는 불교적인 의미를 재미있게 조명해 달라”는 스님과 불자들 요청이 출발이었다. 북한산 27개, 도봉산 3개 산봉우리에 부처님 가르침을 담아 소설이나 동화형태로 책을 냈다. 2013년 12월 출간한 ‘북한산 꼭지’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업무협약 체결 후 첫 스토리텔링 책이다. ‘북한산 꼭지’에 이어 ‘국립공원 힐링로드 77선’도 펴냈다.

“불교문학을 연구하고 쓰는 단체가 드물죠? 여기서 ‘화엄경’ 강의하기도 해요. 불교작가들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초발심이기도 해요. 국보, 보물 등 성보문화재에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석굴암 총감독 김대성 이야기가 아닌 석굴암 부처님을 빚어낸 장한 신심을 그려내고 싶은 거죠.”

남지심은 ‘바띠’에서 탈북대학생을 지원하는 ‘통일바라밀숲’도 창립했다. 오갈 곳 없고 학비가 필요한 학생들이 내민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일이다. 남지심은 “나 역시 그랬고, 누구든 간절하게 손 잡아주길 바랄 때가 있다”며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손을 잡아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자기수행이 힘이다. 틈틈이 해오던 ‘반야심경’ 사경은 1만번을 오래전에 회향했다. 예전엔 우스갯소리로 치부했던 ‘법화경’에 매료돼 사경한다. 최근 ‘노을빠리사’ 공동체를 시작했다.  지기 전 하늘 물들이는 태양처럼 부처님 법비로 자신의 여생과 세상을 적시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중생 기어이 다 구제하고, 번뇌 끊고, 부처님 가르침 배워, 부처님으로 살겠다는 노년의 굳은 약속이기도 하다.

어쩌면 첫 소설 때부터였다. ‘솔바람 물결소리’ 주인공 강기혜는 남지심 자신이기도 했다. 현재 남지심 삶이 강기혜의 다짐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얼른 눈을 감았다. 내 가슴속에서 다솔 스님의 잿빛 승복 위로 불어오던 깊은 산 솔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서였다. 이것은 무엇일까? 내 가슴 속에 와닿는 이 신선한 솔바람 소리는 무엇일까? 다솔 스님을 처음 만난 순간 느꼈던 그 경이로운 감정은 다시 한 번 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내가 눈을 뜨고 혜강을 쳐다보자, 혜강이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혜강이한테 남아있던 꺼림칙한 생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내 가슴속에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혜강이를 위해 힘이 되어 주자.’”(‘솔바람 물결소리’ 중)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다. 지친 나그네에게는 길이 멀다. 남지심 작가는 긴 밤과 멀어진 길에 동행을 자처하고자 한다. 그게 문학이든 탈북민 돕기든, 불교든. 인터뷰 끝 무렵에 그녀를 찾아온 김성애 만다라 작가가 말 한 조각으로 퍼즐을 맞췄다. “예술하려는 후배 불자들에게 그냥 어머니 같은 분이세요.”

남지심 작가가 사경하는 ‘법화경’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나는 모든 중생의 집이 되리라 그들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그녀는 극구 손사래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에게 손 내밀었고, 그 따뜻한 손 맞잡은 누군가에게 그녀는 ‘십지품’ 어디쯤 닿아있는 보살일지 모른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394호 / 2017년 6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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