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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부처님의 제자들

기자명 이제열

대승과 불이 이치 깨우쳐주려 문병 유도

“그때에 장자 유마힐은 생각하였다. ‘내가 이렇게 병이 들어 누워 있는데 대비하신 부처님은 어찌하여 나를 돌보시지 않는가?’라고 하자 부처님은 그 뜻을 아시고 제자 사리불에게 이르셨다.”

유마힐은 법신 경지 오른 인물
문병 계기로 제자들 교화 의도
부처님도 유마거사 의도 간파
사리불도 가르침 필요한 존재

‘유마경’의 제3품인 ‘제자품’에서는 사리불을 비롯한 부처님의 십대제자들이 유마거사를 만나 질책 받는 광경들이 묘사되어 있다. 소승의 성과를 이룬 아라한들은 유마거사의 대승법문에 할 말을 잃는다.

유마거사가 몸이 아프다는 것은 사실 꾀병이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일부러 병든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 다 교화 대상이다. 그런데 그는 교화 대상을 일반인들에게만 적용하지 않고 부처님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에게까지 확대시킨다. 어떻게 보면 부처님의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병의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유마거사가 몸에 병이 없으면서도 부처님의 문병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부처님은 이미 이러한 의도를 간파하셨다. 유마거사와 부처님 사이에서는 문병이 애초 성립되지 않는다. 유마거사는 오랜 세월 불도의 길을 걸어 이미 법신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부처님과 같은 지위에 있어 아프다고 누군가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일어날 수 없다. 경의 내용이 마치 유마거사가 부처님의 병문안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대승의 이치를 펴기 위한 방편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병든 사람은 유마거사가 아니라 그를 문병하러 온 사람들이다. 이를 확대 시킨다면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다 병을 앓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부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유마거사의 입장에서 보면 부처님의 제자들이 일반 범부와 같은 병을 앓고 있지는 않으나 소승법의 병을 앓고 있었다. 그렇기에 궁극적 진리인 대승과 불이(不二)의 이치를 제자들에게 깨우쳐주기 위해 문병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불교에 초기불교가 새롭게 유입되어 많은 불자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부처님의 직설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통성을 강조하고 대승 교리의 부당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대승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초기불교는 분명 소승의 가르침임이 분명하다. 대승의 교리들이 후대에 창작·각색되어 사실성이 떨어지는 듯해도 이치에 있어서는 한층 확대·발전되었다.

대승은 소승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다. 소승의 교리를 불설로 한정 짓고 대승을 비불설로 속단하는 사람들로써는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대승은 도리어 소승을 부처님의 진실을 외면하는 자들이라고 나무란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충분한 논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유마거사의 문병인으로 지목된 이는 부처님의 최고 제자 사리불이다. 사리불은 앞서 ‘불국품’에 등장하여 부처님으로부터 정토에 관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지혜가 높았기 때문에 부처님의 모든 출가 제자들을 대표할 만큼 뛰어났다. 일체 번뇌를 멸진하고 열반을 성취하였으며 생사의 흐름을 건너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경지에 올랐다. 이러한 사리불은 대승의 경전에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신학보살(新學菩薩)로 하향 조정된다.

사리불의 위치가 이러할진대 다른 제자들의 위치는 당연히 불완전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화엄경’ ‘원각경’과 같은 대경(大經)에는 아예 사리불을 비롯한 십대제자들이 등장하지도 못한다. 아라한의 지혜는 반딧불처럼 작기 때문에 태양과 같은 부처님의 법문을 소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리불에게 부처님이 유마거사의 문병을 요구하였으니 사리불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94호 / 2017년 6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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