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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중

“무아론을 이해하면 세계는 평화롭고 행복해집니다”

▲ 강병균 교수는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종교를 불교라고 이야기 했고, 많은 석학들이 불교에 대해 극찬했다”며 “이는 불교가 인류의 지혜에 호소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왜 무아론을 공부해야 할까요? 무아론을 알게 되면 세계가 더 평화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유아론적인 종교들이 피를 부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장 선한 사람이고, 자기들이 신의 종이라고 생각을 해서 같은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불교 역사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불교를 많이 선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교가 좋은 것은 과학기술과 결합이 됩니다. 과학기술은 좀 무심합니다. 그렇지만 불교는 자비심이 있지요. 그래서 무심한 과학기술과 불교를 잘 결합하면 세상에 평화가 오게 됩니다.

유아론적 종교가 피를 불러
자기 종교를 최고로 여기며
종교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
불교역사에선 그런 일 없어

불교, 과학시대 적합한 종교
토인비 등 석학도 불교 극찬
불교는 지혜 호소하기 때문
유아론과 근본적으로 달라

그런데 현재 상황이 어떠냐 하면 전 세계적으로 종교가 굉장히 급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인구가 한 해, 한 해 계속 감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6~7년 전부터 학생들한테 질문을 해 봅니다. 종교가 있느냐, 손을 한번 들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60~70명이 들어가 있는 대형 강의실에서도 한 6명 정도가 손을 듭니다. 일관된 현상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종교가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을 해 봤더니, 첫째 세상이 많이 살기 좋아졌고, 둘째는 종교에서 하는 얘기에 문제가 많아요. 특히 생명과 우주의 기원이나 발생에 대해서 종교가 하는 얘기가 믿을 수가 없고, 사실은 참 무리한 얘기가 많거든요. 진화론을 부인한다든지 6000년 전에 지구가 생겼다든지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세계 인구의 절반은 그런 얘기들을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뉴턴이 있습니다. 아이슈타인 이전에 최고의 천재 과학자라고 하지요. 그분이 세계에 종말이 온다고 자기 원고에다가 써 놨어요. 2060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43년 남았습니다. 통일을 하려면 그 전에 빨리해야 됩니다. 그래야지 한민족이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믿으시겠습니까? 뉴턴의 종말론이 어떻게 발견됐느냐? 뉴턴은 방대한 원고를 남겼습니다. 특히 연금술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사실 물리학보다 연금술, 신학 이런 것에 더 몰두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정열은 거기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물리학을 한 것도 신의 영광을 보여 주기 위해서, 신이 만든 우주가 이렇게 정교하다 이런 걸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남긴 방대한 자료가, 원고 이런 게 경매에 나와서 팔렸는데 그걸 유태인들이 사 갔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어느 대학에서 그것을 사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리하다 보니까, 그 가운데 뉴턴이 2060년에 세계 종말이 온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뉴턴이 친필로 쓴 것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대천재인 뉴턴도 그랬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부처님 제자들이야 그런 일이 없지만 다른 데서는 그런 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어릴 때 부모 손에 이끌려 절이나 교회에 갔습니다. 요즘 부모들이 절이나 교회에 옛날보다 덜 데리고 가나 봐요. 수능시험 공부하려면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언제 거기 가겠습니까?

그것을 보면 신앙이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보살의 능력으로 공부 안 해도 잘 볼 수 있게 해야 될 텐데 그런 일은 없어요. 그것 참 이상하지요. 그래서 종교 인구가 자꾸 줄어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구에서는 지금 불교인구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도 불교인구가 수백만 명이 있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기복으로 불교를 하는 게 아니고 주로 명상을 합니다. 명상을 통해서 자기 마음의 평안을 얻고 내적인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건강한 불교지요. 저와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는 오스트리아의 한 여성학자가 있습니다. 그분은 매년 방학이 되면 몇 달씩 명상캠프에 가서 지냅니다. 굉장히 신기하지요? 우리나라 교수들 중에 그러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한데 외국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로 불리는 토인비가 일찍이 한 말이 있습니다. 그는 20세기에 서구에서 일어난 가장 최대의 사건 가운데 하나는 불교의 서구 전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슈타인도 20세기에, 그러니까 과학 시대에 가장 적합한 종교는 불교라고 얘기했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석학들 가운데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종교에 대해서 혹독하게 비판했던 버트런드 러셀도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겠지만 그분은 종교의 몽매성, 헛소리, 잔혹함, 폭력 이런 것들에 대해서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해서는 극찬을 합니다. 이분은 “불교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의 실상에 대해서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지혜와 덕에 있어서 불교가 최고다. 자기는 종교가 없지만 꼭 종교를 가져야 한다면 불교도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인류의 지혜에 호소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불교에서 지혜라는 것은 삼법인이고, 삼법인의 가장 핵심은 무상·고·무아인데 무상·고·무아라는 것은 결국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을 본다는 것은 곧 지혜입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7일 동안 뭐 했을 것 같습니까? 뭐 했을까요? ‘내가 왜 출가했나’하고 후회했을까요? ‘6년 간 죽도록 고행만 했는데 도대체 이게 뭐야’ 이렇게 했을까요? 아니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무념무상으로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거기 앉아 있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면 바둑이도 고양이도 가만히 보면 무념무상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물끄러미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부처님이 그 7일간 보리수 밑에서 뭘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흔히 우리 불교에서 부처님이 샛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니까 샛별을 본 게 원인이고 깨달은 게 결과인 것처럼 얘기합니다.

그런데 초기 경전에 보면 무수히 나와 있습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12연기를 깨달았다, 연기법을 깨달았다고 나옵니다. 그러면 결국은 부처님이 7일 동안 하신 것은 사유라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불경에도 보면 부처님이 그렇게 토로하십니다. ‘만약 나에게 인내력과 정진력이 없었으면 나는 깨달음을 못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유력과 인내력이 없었으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사유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우리 불자님들은 사유에 대해서 좀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과학의 시대, 그 다음 세계화 시대에서 살아가려면 사유를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다시 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곰곰이 살펴보면 인류 종교의 역사는 무아론과 유아론의 역사입니다. 유아론의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왜 유아론인가’라는 생각을 안 해 보셨지요? 하나님은 유아론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최고의 아(我)는 바로 하나님이거든요. 보세요.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까? 우주를 창조하기도 파괴하기도 하고 그다음에 구원을 해 주기도 하고 지옥에 보내기도 하고 자기 마음이거든요.

캘빈의 예정설 같은 것을 보면 모든 사람의 구원은 미리 예정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이 생겨나기 전부터 구원할지 안 할지를 정해 놨습니다. 최고의 아지요. 뭐든지 마음대로 하니까.

힌두교를 보더라도 ‘브라흐만’이라고 하는 우주적인 아가 있습니다. 그게 모든 개별적인 아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우주적인 아와 개별적인 아가 같다 해서 범아일여(梵我一如)를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게 한국불교에도 들어와서 그런 유의 얘기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철저한 무아론입니다. 우리 한국불교는 유교적인 토양 속에서 자라지 않았습니까? 유교의 공자님과 부처님을 비교해 보면 공자님과 부처님은 결코 ‘아’에 대해서, ‘아’를 찾으라거나 그런 얘기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지금 당면한 고를 해결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거든요. 그래서 공자님 같은 경우는 죽음에 대해서 질문을 받고 내가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에 대해 논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부처님도 여래가 사후에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만약에 어떤 사람이 화살에 맞았는데 화살을 쏜 사람의 이름이나 성이나 나이나 출신 부족이나 이런 것을 다 알기까지 또는 화살의 종류, 깃털의 종류, 날아온 방향 이런 것을 다 알고 나서 화살을 뽑겠다고 하면 화살을 뽑기 전에 죽을 거라고 우회적으로 돌려서 말씀하셨습니다. 만동자(말룽카풋타)를 그렇게 타이르신 게 기록에 나오거든요.

우리가 길을 가다가 발에 가시에 박혔다고 합시다. 그러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가시부터 뽑아야지요. 그때 아트만, 브라흐만, 하나님, 불보살 그런 것들은 없습니다. 이걸 어떻게 뽑을까라는 그런 생각만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렇듯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당면한 고를 해결하는 게 가장 급한 일이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공자님과 부처님입니다. 공자님은 사회제도의 개혁을 통해서 고를 줄이려고 했고, 부처님은 개인의식의 전환을 통해서 고를 줄이려고 한 겁니다.

사회 개혁이나 개인의식의 전환이라고 할 때 사회라는 건 기본적으로 무아입니다. 국회가 있다고 할 때 국회에 ‘아’는 없거든요. 1대부터 20대까지 국회가 이어져 왔지만 옛날 국회의원은 지금 한 명도 없습니다. 직원 역시 한 명도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국회라고 얘기하고 국회가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할 때 마치 어떤 실체가 있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변하기 때문에, 끝없이 변하기 때문에 실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기본적으로 무아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통해서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면 사실은 그게 무아론입니다. 또 구성원들이 굉장히 서로 영향을 주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연기론이기도 합니다.(계속)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이 내용은 강병균 교수가 5월17일 국회불자모임인 정각회 초청 강연회에서 ‘무아론’을 주제로 강의한 것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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