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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스님들의 비애

기자명 광전 스님

얼마 전 조계종이 주최한 미래세대준비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회의에 참석했던 스님들끼리 차를 한잔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 비구니스님이 두 분 계셨는데, 젊고 활발한 포교활동을 하는 유능한 스님들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구니스님들이 종단에 바라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종단을 위해 역할을 하고 싶은데 역할을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종단이 요구하는 대로 기본교육을 이수하고 구족계를 수지하고, 전문교육을 받고 3급 승가고시에 합격해도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아울러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보니 본인의 생활 또한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런 어려움은 비구니스님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비구스님들도 주지소임을 보다 그만두면 역할은 고사하고 거처할 공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토굴을 마련해 살든지, 선방을 가든지 하는 것이 현재 조계종의 스님들이 처한 현실이다. “출가할 적에는 출가해 열심히 공부만 하면 다른 문제는 종단이 알아서 다 해결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살다보니 종단은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식으로 항상 요구만 했지 스님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가사장삼도 자신이 돈을 주고 사야하는 형편이니 다른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종단의 많은 수입이 다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는 하소연하는 비구니스님들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이건 우리 종단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조계종은 가톨릭이나 원불교, 천태종처럼 중앙집권제 체제의 교단도 아니고, 개신교나 태고종처럼 각자의 사찰이 독립된 재산권과 인사권을 가진 느슨한 연합체의 체계도 아닌 그 중간 지점의 어중간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중앙집권제의 체계를 가진 교단은 모든 수입과 인사권이 중앙에 있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들에게 직무가 주어지고 또한 노후복지 같은 것도 체계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고 교단의 지휘체계에 따라야 한다. 반면 독립된 인사권과 재산권이 보장된 느슨한 연합체의 체계를 가진 교단은 각자 생활의 기반인 사찰로 출가해 그 사찰을 기반으로 수행하고 사찰의 형편에 따라 복지제도가 운영되므로 교단의 역할은 거의 미미하다. 대신 교단은 개인의 생활에 거의 간섭하지 않으며 모든 생활의 책임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우리 종단은 실제 생활면에서는 느슨한 연합체의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 행정은 중앙집권체계를 지향한다. 종단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설사암의 실질적인 인사권은 창건주에게 있고 그나마 몇 안 되는 공찰의 인사권 또한 문중이나 실력 있는 몇몇 인사들에게 있으니 재정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는 더 적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인사권과 재산권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종단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인사권과 재정권을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지 못하니 법계직무제도를 실행해야 한다고 일부에서는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현재 조계종은 지방자치제를 모방한 교구중심제를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교구중심제도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 첫째가 교구간 재정불균형이다. 재정이 우량한 본사와 열악한 본사의 차이가 너무 심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불균형은 심화될 것이다. 국가의 지방자치제는 국가가 거둔 국세의 재분배를 통해 지자체간 재정불균형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는 기능이 있는데 우리 종단은 그런 기능이 없고, 대한민국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어 자유롭게 다른 지자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종단은 처음 출가할 때 본사가 정해지면 다른 본사에 가서 살더라도 본사 이적은 할 수 없고 살고 있는 교구에서의 참정권이나 복지혜택이 제한된다. 상당히 불합리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종단의 구성원이 느끼는 모순은 극복되기 힘들 것이다.

광전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chungkwang@yahoo.com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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