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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생명을 쓰는 삶

기자명 금해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6.12 15:40
  • 수정 2017.06.12 15:42
  • 댓글 0

수많은 물건 쉽게 사고 버려져
인연 닿은 물건 소중히 다뤄야
만물 입장선 손익 계산 무의미

오래된 부실한 옷장이 못 쓰게 되어 새 가구를 맞추었습니다. 아예 붙박이로 만들어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모양의 가구가 들어왔습니다. 방에도 잘 맞지 않아서 돌려보내려니, 맞춤 가구라 다른 곳에는 쓸 수 없어 그냥 버려야 한답니다. 고민하다가 불편하더라도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거사님이 화를 내었습니다.

“스님, 상대의 잘못이니, 취소하고 다시 만들어 오게 하면 됩니다. 왜 돈 주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쓰려고 하십니까?”
“그래도 되지만, 가구가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돈 주고 샀지만, 가구가 된 몇 백년 된 나무의 목숨 값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맞지 않다고 어떻게 그냥 쓰레기가 되게 하겠습니까? 나무를 생각해서 끝까지 잘 써 주어야 조금이나마 그 목숨 값을 갚는 게 아니겠습니까?”

거사님은 뜬금없는 나의 대답에 말을 잊었는지, 그저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어느 보살님이 절에 흔들의자를 선물했습니다. 아주 튼튼한 원목으로 잘 다듬어진 멋진 의자였습니다. 절에 오시는 분들이 즐겨 사용하는 안락한 자리가 되었지요. 사실 이 흔들의자는 보살님 집 근처에 버려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오래 되었지만 멋진 의자를 보는 순간, 보살님은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무거운 의자를 끙끙 끌고서 아파트 집까지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무거운지 팔이 끊어질 듯 했습니다. 가족들은 그런 보살님을 타박했지만, 십 여일을 사포로 때를 벗겨내고, 떨어진 곳을 고쳐 칠을 해서 새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가치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에 수없는 물건들이 매일 매일 헤아릴 수 없이 만들어지고, 또 버려집니다. 작은 연필부터 옷, 용품이나 음식들까지 우리들의 의식주에 쓰이는 것은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자기 돈으로 샀기 때문에 내 것이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불한 것은 재료비, 인건비, 유통비 등의 인간 중심으로 매겨진 값일 뿐, 가장 근원인 생명의 목숨 값은 없습니다. 채소, 생선, 가축은 물론이고 나무나 돌, 금속 조차도 각자의 생명,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불한 금액에서 이들의 한달이나 1년, 또는 백 년, 천 년의 생명 값은 없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쓰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 인연이 된 것은 최대한 소중하게 아끼며, 수명까지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에 대해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 될 겁니다.

가구 때문에 화를 냈던 거사님은 떠나갈 때쯤에야 생각이 정리된 듯 했습니다.

“내가 손해 보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다투기도 많이 했는데, 만물의 입장에서 나의 손익은 아무것도 아니네요. 공부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며칠 후에는 가구 사장님이 절에 필요한 작은 책장을 하나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는 미안하고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습니다.

▲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스님, 지금까지 30년 동안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나무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 생각하니 내 일이 전혀 달라 보입니다. 앞으로는 책임을 갖고 신중하게 일 해야겠습니다.”

친하거나 멀거나, 약한 것이거나 강한 것이거나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합니다. 주변의 모든 것을 생명으로 본다면 세상은 더 값지고 귀한 존재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또한 자연을 해치는 행위들은 멈출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내는 아름다움은 더욱 풍요로운 세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곁에 있는 낱낱의 모든 생명을 아껴주시길 바랍니다.

금해 스님 okbuddha@daum.net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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