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2. 소나무가 사는 집

기자명 조정육

나무와 계곡이 사찰 속으로 들어온 이유

▲ 백범영, ‘송음(松陰)’, 70×111cm, 종이에 먹, 2015 : 고려 말에 살았던 길재는 이런 시를 남겼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의 시가 아니라도 사람의 수명은 산천보다 짧다. 우리 모두는 산천에 잠시 몸을 기대어 살다 가는 사람들이다. 짧은 세월을 살면서 우리에게 공간을 내어준 산천을 파괴하지 말고 정갈하게 쓰다 가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도 오래된 소나무 아래 거니는 즐거움을 누려야 되지 않겠는가.

북한산 금선사에 다녀왔다. 특강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찾은 길이라 지난번처럼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경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로움까지 생겼다. 한 달 전에 왔을 때는 놀람 그 자체였다. 서울 시내에 있는 도심 사찰이 어쩌면 이렇게 시골스러울 수 있을까. 믿기지가 않았다. 요즘은 아무리 깊은 산속 오지에 있는 절이라도 찾아가기가 어렵지 않다. 차가 일주문 앞까지 들어갈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금선사는 구기동 주택가 바로 위에 있는 절이다. 당연히 접근성이 뛰어나리라 예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주차장은 산자락 끝에 있는 절 입구에 있을 뿐 차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자동차길 자체가 없었다. 나머지 길은 오로지 걸어가야 했다. 게다가 올라가는 길도 가파르고 경사가 심했다. 비탈길에 깔아놓은 돌 높이도 들쑥날쑥했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돌이 있었던 것일까. 분명히 사람의 손으로 닦은 길인데 전혀 다듬지 않은 듯 돌들이 울퉁불퉁했다. 조심하지 않으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형편이 얼마나 어려우면 이렇게 방치했을까. 신도를 배려하는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절이다. 길도 닦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절에서 다달이 외부강사를 초청해 특강을 하다니. 주지스님은 어떤 분일까. 처음 금선사에 갔을 때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강 위해 향한 북한산 금선사
나무 둘레에 맞게 마루판 파고
서까래 닿지 않도록 처마 내려
산에 안겨 자연스레 주인된 절

그런데 참 이상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 절을 찾는 사람 마음이 이러했을까. 아주 심하게 몸을 고달프게 하는 절인데도 마음은 편안했다. 그 편안함의 정체는 일주문을 지나고 범종각을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주지스님을 만나기 위해 절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데 우람한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족히 몇백 년은 되었을까. 용트림하듯 하늘을 향한 소나무에 반해 나도 모르게 나무의자에 앉았다. 한 뿌리에서 나와 중간에서 둘로 갈라지고 휘어진 소나무가 마치 뱀과 거북이 암수 한 몸이 되어 서로의 몸을 칭칭 감은 현무 같았다. 수백 년의 세월을 베어지지 않고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측은함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건물을 지을 때 목수들이 가장 꺼려하는 것이 건물 가까이에 있는 나무다. 나무뿌리가 뻗어나가면서 건물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 곁에 세운 건물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 뿌리 때문에 자칫 기단석이 솟구치거나 마루가 들릴 수 있어 붕괴 위험이 우려된다. 이름 있는 사찰의 전각을 짓는 목수라면 오랜 경륜을 갖추었을 것이다. 나무뿌리의 위험을 모를 리 없는 목수가 굳이 소나무를 살려 두었다. 주지스님의 고집이고 의지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나무가 절묘하게 건물과 어우러져 있다. 마치 한 몸처럼 서로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며 옆 자리를 내주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 고개를 들어보니 옆 건물 처마가 특이하다. 주지스님은 소나무 가지를 자르는 대신 건물 처마를 한 단 낮추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소나무는 수백 년 동안 하늘에 가 닿고자 했던 염원을 앞으로도 계속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백 년이 넘는 시간을 한자리를 지켜온 소나무이니만큼 하늘을 향한 가지 끝에 신령스러움마저 깃들어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소장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산 소나무는 오랜 세월 바위틈에서 자라면서 자생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재선충 같은 병충해에도 끄떡없다고 한다. 그런 나무도 인간의 욕심과 무지에 의해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위태로운 현실에서 살아남았으니 내가 나무를 보고 측은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무의자에서 일어나 계곡을 따라 심검당으로 오르는데 특이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가 건물 2층 난간을 뚫고 지붕까지 뚫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무도 건물도 전혀 손상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건물 마루를 나무에 맞춰 짜 넣었다. 마루를 깔면서 마루판을 미리 나무 둘레만큼 둥글게 판 다음 나무에 끼워 맞춘 것이다. 지붕도 마찬가지다. 처마를 내면서 서까래가 나무에 가 닿지 않을 만큼 짧게 잡고 나머지 부분은 물받이 홈통을 달았다. 나무도 살리고 건물도 불편하지 않게 짓고자 한 지혜의 결과다. 이뿐만이 아니다. 심검당 앞 벽면에는 살아있는 소나무가 기둥처럼 서 있다. 이렇게 나무를 살리면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예산과 공력이 훨씬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주지스님의 세계관이 놀랍다. 심검당뿐만 아니라 계곡을 따라 알맞은 크기로 들어선 전각들에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산세에 맞추려는 주지스님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실용성만을 따지는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건물 배치법은 예산낭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금선사는 산을 호령하는 절이 아니라 산의 품에 안겨 있는 절이 되었다. 절이 주인이 아니라 나무와 바위가 주인인 절이 되었다.

우리나라 건축은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장점이다. 휘어진 나무를 반듯하게 치목하지 않고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까래나 기둥으로 쓰는 것은 다반사이다. 안성 청룡사 대웅전의 측면과 후면 기둥이 대표적이다. 화엄사 구층암의 요사채 기둥은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쓴 것으로 유명하다. 삼척 죽서루는 누각을 지으면서 바닥의 바위 모양에 따라 기둥의 길이를 다르게 했다. 경주 남산의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벼랑 위의 바위를 1층 기단부로 삼아 탑을 쌓음으로써 산 전체를 탑이 되게 했다. 밀어버리고 깎아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자연을 우리의 삶 속에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이고 묘미다. 그 아름다운 전통의 계승을 금선사에서 다시 확인했다. 더구나 금선사 심검당은 이미 잘라낸 목재를 사용한 다른 건축과 달리 살아있는 나무를 건물에 끌어들인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금선사에서는 집과 나무가 한 몸이다. 나무는 나무대로 건물은 건물대로 서로의 자리를 밀어내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세계가 펼쳐져있다. 수천 년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나무와 계곡의 흐름을 건축 안에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금선사 건축의 미학이었다. 그래서 주차장을 절 입구에 만들어놓고 굳이 가파른 산길을 걸어오게 했다. 신도를 배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지키고 싶어서 돌길로 남겨둔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꼭 경전에서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건물 한 동, 나무 한 그루, 돌맹이 하나에서도 읽고 실천할 수 있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