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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빈승이 정한 새로운 계율 ②

“부끄러움과 수치심 없다면 누구든 발전할 수 없습니다”

▲ 불광산 불자들이 과일 다듬기 울력에 열중하고 있다.대만 불광산 제공

"알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할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럽고 청정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우면 수행의 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인연을 어렵지 않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넷째 ‘좋은 사람을 추천할 수 있어야 한다’입니다. 좋은 사람을 추천하라고 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추천하고 싶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란 자기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평가입니다. 마음속에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필히 그 자신도 좋은 사람일 것이고 마음속으로 남들을 모두 아주 나쁘다고 여기고 있다면 필히 그 자신도 문제 인물의 한 사람일 것입니다. 종교단체에서 좋은 사람을 추천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수행의 하나입니다.

현재 민주적인 선거는 좋은 사람을 추천하는 것입니다. 건전한 사회와 단체에는 좋은 사람을 앞세워야 하고 좋은 사람으로 하여금 통솔하게 해야 합니다. 중국고대 ‘요순(堯舜)’이 사심 없이 천하를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는 백성의 나라였으며 사회는 백성의 사회였으니 백성을 떠나 나라와 사회의 존재가 가능했을까요? 그래서 나라를 세우고자 하면 먼저 현명한 지도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현명한 지도자를 원하면 대중들이 지도자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하고 한마음으로 단결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추천하고 좋은 사람을 따르고 지지해야 이 사회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기꺼이 남을 찬탄해야 한다’입니다. 총림에는 사방팔방에서 모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데 남쪽지방 사람, 북쪽지방 사람 등 각자 개성이 강하면서도 다툼이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교적인 언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른스님께 법문을 부탁드립니다’ ‘제자에게 큰 가르침이 됐습니다’ ‘정말 저의 선지식이십니다’ ‘그 한 말씀으로 꿈속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에 제자는 구름이 걷히고 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강사님은 제불보살님의 경계에 계신 분으로, 제자들이 우러르고 배우는 대상입니다’ ‘자비하심과 원력을 모두 갖추셨네요’ 등이 그러한 언어입니다.

마치 부처님 시대에 대가섭 존자가 부처님께 ‘저희들의 큰 스승으로 제자들 모두가 부처님께 귀의하기를 원하옵니다’라고 하였고 아설시(阿說示) 존자의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겨나고 모든 법이 인연으로 소멸한다(諸法因緣生 諸法因緣滅)’는 게송을 듣고 사리불이 도반 목건련에게 ‘우리들에게 밝은 스승이 있다’라고 찬탄한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아미타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동방세계, 서방세계, 남방세계, 북방세계 등 무량제불을 찬탄하시고 시방제불께서도 석가모니불을 찬탄하셨는데 이렇게 서로 찬탄을 주고받으면서 상호간에 좋은 말을 하셨습니다. 불광회에서 좋은 말하기 운동을 펼치는 것처럼 남을 인정해주고 남을 찬탄하는 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찬탄하는 수행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여섯째 ‘인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입니다. 발심하여 불법을 배우는 중요한 입문으로 인욕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중국 유교에 ‘백인가훈(百忍家訓)’이 있고 불교에서는 “삼대아승지겁에 걸쳐 복덕과 지혜를 닦고 백겁에 걸쳐 상호장엄을 닦는다(三祇修福慧 百劫修相好)”라고 하였는데 즉 복덕지혜와 상호장엄을 갖추었는데 가장 중요한 수행이 바로 ‘인욕’이라는 말입니다. ‘금강경’에 부처님은 과거에 ‘가리왕(歌利王)’을 위해 몸을 잘라주었지만 마음에 성냄이 전혀 없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모욕을 받을 때 원한을 품지 않고 화를 내지 않으면서 태연하게 대처하려면 먼저 입에서 참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얼굴에서 참아야 하며 다시 마음으로 참아야 합니다. 온갖 훼방과 모욕, 비웃음을 마치 감로수를 마시듯이 할 수 없다면 수행을 성취하기가 어렵습니다.

인내는 지혜이고 인내는 힘이 됩니다. ‘생인(生忍), 법인(法忍),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함은 생존과 생활에서 세상의 인간관계를 알고 세상인정과 이치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 이치에 대해서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처리해서 해결하고 풀어낸다면 하늘을 덮었던 검은 구름은 지혜의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걷히고 흩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생인과 법인의 수행은 바로 모든 바깥 경계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책임지고 처리하여 풀어내는 것이니 당연히 ‘무생법인’을 증득하여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자비심을 길러야 한다’입니다. 수행에서 인욕은 소극적인 수행이고 적극적인 수행은 자비심을 내고 키워내는 일입니다. 자(慈)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비(悲)는 괴로움을 없애 주는 것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중생의 고통을 없앨 수 있으려면 반드시 우선 봉사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만약 봉사하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자비와 어찌 감응할 수 있겠습니까?

봉사라 함은 청년수칙에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움의 근본으로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보살도를 행할 수 있다면 관세음보살님처럼 능히 어려움에서 구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자아수행이고 자아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데 자기의 고난을 없애지 못할까 두려울까요? 그래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먼저 행할 수 있는 사람은 필히 그 자신이 더 많은 이로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봉사와 자비는 천천히 물을 주면서 키워나가야 합니다. 마치 논밭의 어린 싹과 들판의 과일나무처럼 시간의 세월 속에서 쉬지 않고 수행하고 성장하여야 자기의 자비발심을 키워낼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무상보시 무아도생(無相布施 無我度生)’이 바로 진정한 자비입니다.

여덟째 ‘도덕적 용기가 있어야 한다’입니다. 수행하고 불도를 배우기 위해서는 남과 다투지 않으면서 좋은 사람이 되려는 소극적인 태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남에게 잘 대해주어야 할 뿐 아니라 잘 대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피해를 보는 ‘희생’을 능히 감내할 때 신앙을 위하고 사람을 위한 도덕적 용기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지만물을 위해 마음을 쓰고 세상 백성을 위한 의지처가 되고자 한다(?天地立心 ?生民立命)’라는 가르침입니다. 도덕적 용기가 없으면 단지 소극적인 좋은 사람일 뿐이지 적극적으로 발심하여 불도를 닦는 보살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유교에서는 인의도덕(仁義道德)을 성취하기 위해서 소위 ‘자기 몸을 희생하여 인의를 이루고 목숨을 버리더라도 옳은 일을 한다(殺身成仁 捨生取義)’라고 말합니다. 불심은 유교의 도덕관념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욱 진취적입니다. 살신성인, 사생취의 혹은 그 무엇을 위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불교에서는 몸을 내어주고 목숨을 버리면서도 그 형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칭송받기를 바라지 않으며 모든 것에 ‘무아무상(無我無相)하라’고 말합니다. 자기 모습에 집착하지 않아야 더욱 도덕적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홉째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입니다. 부처님은 간혹 제자들에게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타이르셨는데 이는 매우 엄중한 비평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바로 수치를 모르는 것으로, ‘부족함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사람 누구에게나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수치심이 조금도 없다면 그 품성은 결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수치스러움과 창피함의 옷은 위없이 장엄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인격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할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럽고 청정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우면 수행의 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인연을 어렵지 않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은 자신에게 미안하고 창피함은 남에게 미안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미안하고 남에게 미안함을 자주 느끼거나 심지어 성현과 부모에 대해 우리들 자신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자녀를 잘 이끌어주지 못하고 학생에게 풍부한 지혜를 전해주지 못하기에 학생, 자녀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듯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세간의 모든 일과 모든 것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함이 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발심하게 되고 용기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부끄러워하고 수치심을 느끼면서 우리들의 품성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열 번째 ‘시간을 지키고 신용을 지켜야 한다’입니다. 시간은 곧 생명으로, 시간을 지키지 않는 당신은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아끼지 않음은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신용이 없으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으니 인격의 양성은 성실한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거짓말과 헛소문의 원인은 다른 사람의 수고와 공덕을 존중할 줄 모르는데서 비롯되고 다른 사람의 도덕과 인격에 대해서 함부로 비방함은 남들의 판단을 기다릴 필요 없이 자기 스스로의 아집에 따른 판단에서 비롯되나니 그 죄업의 무거움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사람은 시간을 지키고 신용을 지키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사람과 약속을 하거나 회의에 참석을 하거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필히 시간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시간을 지키는 인생이 미덕이며 성실한 믿음을 주는 인생은 더욱이 인생에 금메달을 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누구는 아주 성실한 사람이고 누구는 아주 신용이 있다면서 칭찬하는 것은 당신이 바로 도덕군자임을 나타내는 증명입니다. 사람이라면 왜 도덕군자를 마다하겠습니까?

이상의 ‘행해야 하는 열 가지’ 이외에도 사중을 아끼고 돌봐야 하고 종문사상을 가져야 하며 대중을 따르고 부지런하고 겸손할 수 있어야 하며 인과관념 등등을 가져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앞에서 말한 ‘행해야 하는 열 가지’는 적극적인 불도수행이고 이어서 말하고자 하는 ‘행하지 않아야 하는’ 열 가지는 소극적인 덕목입니다. 적극적인 수행은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으며, 소극적인 수행은 행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수행이라도 당신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도리가 아닙니다. ‘행하지 않아야 하는 열 가지’의 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치품을 즐겨 사면 안 된다’입니다. 부모님을 떠나서 출가하였으면 세속을 버리고 불도에 들어선 것이니 세속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남들이 재물에 매달리더라도 우리는 베풀어야 하고 남들이 명예를 추구하더라도 우리는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남들이 화를 내더라도 우리는 인내해야 하며 남들이 약삭빠르게 굴더라도 우리는 우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이 세속을 흠모하고 특히나 사치품을 좋아하고 유행을 따르면 담백하고 소박한 생활의 불도를 추구할 수 없으니 성공하기 쉽지 않습니다. 불도를 배우기로 하였다면 외적인 물건과 사치품으로 자신을 장엄할 필요가 없으며 마음속으로 계정혜 삼학(三學)을 닦고 배워 자신을 장엄해야 합니다. 마음속 아름다운 생각으로 자기 몸을 장엄하는 것이 진정한 명품입니다.

둘째 ‘남을 가볍게 대하면 안 된다’입니다. 절집에는 위로 스승과 어른이 계시니 우리는 덕목을 보도록 해야지 부족함을 보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같이 공부하는 도반이 있으니 서로 격려하고 서로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후학들이 있는데 지금은 조금의 부족함이 있더라도 장래에 그들은 큰일을 성취해 낼 것입니다. 신도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의식부모가 되며 만약 우리의 원수나 앙숙이라고도 역증상연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어찌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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