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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서울 개운사 대원암

기자명 이병두

숱한 인재 키워낸 ‘작은 건물 큰 도량’

▲ 한영 스님이 전문강원을 운영하던 시절로 추정되는 대원암 전경.

서울 개운사는 찬란한 전각 등 ‘유형’의 자산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1845년 우기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대원암(大圓庵)에 1926년 석전 한영(1870~1948) 스님이 불교전문강원(이하 ‘강원’)을 설립하여 근대 교육을 실시하면서부터 이루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큰 소임을 맡아온 ‘무형’의 자산이다.

1926년 한영 스님 강원 설립
청담·서정주·조지훈 등 공부
현대에는 대장경 전산화 산실

조계종 탄생의 주역 중 한 분이었던 청담 스님이 이 ‘강원’에서 공부했고, 신석정·서정주·이광수·조지훈·김달진 등 한 시절을 풍미했던 한국 근대문학의 거두들이 젊은 시절 학인이 되어 공부를 하거나 교장인 한영 스님의 지도를 받으러 이곳을 드나들었다.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는 “매우 견디기 어려운 한밤중에 홀로 깨어 고민하는 때의 언저리쯤에는 반드시 다시 이 분의 깊은 도애(道愛)를 돌이켜 생각하곤 어머니의 품속에 파묻히는 아이처럼 파묻히어 새로 살 힘을 얻는다”고 ‘강원’에서 입은 스님의 은혜를 회고했다.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소설가 춘원 이광수는 일시적으로 승려가 되려고 한영 스님께 간청했지만 스님이 “그대는 중노릇 할 사람은 아니다”며 설득해서 되돌려 보낸 적도 있다고 전한다. 당대 최고 학승이었던 한영 스님은 3000수에 이르는 한시를 남긴 저명한 시인이었을 뿐 아니라 어둠 속에 방황하는 젊은 문학도들에게 등불을 밝혀 ‘길’을 알려주는 스승이었다.

위 사진은 한영 스님이 ‘강원’을 설립·운영하던 시절의 대원암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데, 오늘날까지도 그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이곳도 서울 도심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암자 뒤로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산사의 멋과 맛이 풍기던 곳이었다. 그러나 소박하다고 해야 맞을 대원암의 이 ‘작은 건물’ 한 채가 숱한 불교 인재를 키워낸 교육기관이었고 훗날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게 되는 젊은이들이 서로 고민을 나누고 격려해주는 ‘큰 도량’이었던 것이다.

이 ‘작지만 큰 도량’이었던 대원암은 한영 스님과 ‘강원’이 세상과 인연을 다한 뒤에도 한국 불교의 정신을 이어주는 증명의 전통을 끊지 않았다. 1970년대에는 대강백인 탄허 스님이 이곳에 주석하면서 ‘화엄경’ ‘원각경’ 등을 번역하고 서울 시내에서 대학생을 비롯한 대중들을 위한 불교 강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1981년부터는 승가 교육의 중심인 중앙승가대학이 개운사에 자리를 잡아 김포학사로 옮겨갈 때까지 인재 양성과 불교 개혁 참여 등 현대 불교사에 여러 자취를 남기기도 하였다.

한편 그 뒤로 대원암에는 조계종 어산작법학교와 ‘대장경 전산화·초조대장경 복원’의 큰 성과를 이룩한 고려대장경연구소가 둥지를 틀어 ‘한국불교 근대와 현대사의 증명’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대원암이 위에서와 같이 ‘좋은 자취’만 계속 남겨주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비구와 대처측이 충돌하여 개운사 대원암 문짝을 부순 혐의로 즉심에 회부되었다”(동아일보 1963.2.19)는 ‘어두운 역사 기록’이 있어 안타깝다. 그래도 ‘작은 건물 큰 도량’ 대원암이 간직해온 훌륭한 역사에 비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마음을 너무 크게 쓰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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