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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리불과 좌선 ①

기자명 이제열

고요한 곳에서만 선정 드는 것 아니다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거사를 찾아가 위문하여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를 찾아가 병문안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옛적에 숲 속의 나무 아래서 조용히 앉아 선정에 잠겨 있었는데 유마거사가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리불이여, 선정은 꼭 앉아서 드는 것이 아닙니다. 선정이란 삼계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몸과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 선정이며, 멸진정의 상태에서도 온갖 단정한 위의를 나타내는 것이 선정입니다.’”

부처님, 사리불에 문병가라 권유
사리불, 유마거사와의 일화 고백
“선정은 삼계 안 떠나” 지적받아
유마, 대승의 멸진정 관점 피력

사리불은 일체의 번뇌를 깨뜨리고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이다. 그가 하는 일은 늘 숲이나 나무 아래에서 선정의 기쁨을 누리는 일이다. 세속은 번잡하고 온갖 더러움이 가득하기 때문에 선정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인적이 드믄 장소를 택하여 좌선을 해야만 선정의 상태가 잘 유지된다. 사리불의 경우 좌선을 하는 이유는 번뇌를 없애거나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이미 모든 수행을 완성했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열반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유마거사가 말하는 선정은 삼계를 떠날 필요가 없다. 삼계 속에서 몸과 마음을 그대로 두고 삼계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선정은 삼계와 선정을 대립적 관계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화엄경’ 같은 큰 가르침에서는 삼계가 곧 부처님의 선정 그 자체라고까지 말한다. 이러한 이치로 인하여 유마거사는 선정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따로 숲속이나 나무 밑을 찾아 갈 필요가 없음을 역설한다. 사리불로 대표 되는 소승 선정은 일상의 생활과 선정이 분리되어 있어 선정과 선정 아님에 차별이 있다.

그러나 유마거사가 누리는 대승의 선정은 일상생활과 몸과 마음의 움직임이 모두 선정 아님이 없다. 좌선 속에서만 선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본문에 멸진정(滅盡定)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멸진정이란 상수멸정(想受滅定)의 줄임말로 수행자가 도달할 수 있는 불교 최고의 선정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모든 생각이 다 소멸하여 어떠한 번뇌도 일어나지 않는 선정이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이 선정은 소승의 아나함과(阿那含果) 이상의 성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특별한 선정이라고 한다. 보통 불교의 선정은 초선, 이선, 삼선, 사선, 공무변처선, 식무변처선, 무유처선, 비상비비상처선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멸진정은 이 과정을 벗어난 선정이다.

이 선정에 들면 몸과 마음이 조금도 활동하지 않으므로 일체의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유마거사는 이러한 멸진정의 상태에서도 온갖 거룩한 행위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와 같은 주장은 대단히 파격적인 내용으로 소승의 가르침에서 본다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다. 어떻게 멸진정의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가? 이는 선정을 설명하는데 있어 소승과 대승에 입장차가 뚜렷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소승의 멸진정은 몸의 느낌과 인식들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의 선정인데 반해 대승의 멸진정은 몸의 느낌과 인식들이 그대로 활동하는 상태에서의 멸진정이다. 이는 대승에서 멸진정을 해석 하는데 있어 소승처럼 몸의 느낌과 인식이 사라진 상태에 두지 않고, 마음을 깨달아 미혹이 없어진 상태에 두었다는데 있다. 즉 마음을 깨달아 미혹이 사라지면 일체의 번뇌가 동시에 다하여 청정해지기 때문에 일부러 느낌과 인식이 다 끊어진 상태에 도달할 필요가 없다. 느낌과 인식이 그대로 존재하더라도 그것들에게 번뇌가 다하였으므로 멸진정이며 일상의 생활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게 된다. 이로써 좌선과 좌선 아님이 평등해지고, 결국 좌선을 한다느니 안한다느니 하는 등의 차별이 없게 된다. 한마디로 좌선과 좌선 아님이 불이의 관계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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