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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행일기] 황문숙

기자명 법보신문

어머니 새벽기도로 불연
아버지에 의존하던 마음
남편에게 투영하며 고통
마음의 노예서 벗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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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도재

내게 부처님은 새벽 어스름처럼 불투명하게 다가왔다.

불교를 처음 접한 것은 친정어머니의 새벽기도였다. 어머니의 기도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촛불 밝히고 향 피우면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문 같았던 그 기도는 잠결이라도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았던 것 같다. 훗날 절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술술 나오게 됐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몇 해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새벽기도하며 삶 속에서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고 살아왔다. 노보살로서 팔순이 넘어서도 늘 부처님 말씀 새겨진 경전을 읽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던 분이다. 그 어머니에게서 불교를 접했다. 난 어리석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어머니에게 염불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참선을 해야 한다”고 감히 권했던 아주 어리석은 딸이었다. “성불하옵소서.”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게 아버지는 어머니였다. 일 나가며 어머니가 짜놓은 젖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손수 나를 키운 아버지였다. 몸이 불편해 밖에 일을 할 수 없어 집안일을 했고, 어머니가 장사를 나갔다.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난 홀로 남았다. 집에서 일 나간 어머니가 늦은 시간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내 어린 시절은 외롭고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도 지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악바리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강하게 또 강하게 살았다.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반듯하게 행동해야 했다. 뭐든지 잘 해야 했고 애를 써야 만이 기회가 온다고 느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내게 오는 기회는 어떻게든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때는 기뻤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나를 자학하면서 사는 삶이 되어 가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막내로서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난 늘 힘들다고 느끼면서 살았다.

결혼을 하게 될 무렵, 난 아버지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원했다. 다행히 그런 사람 만나서 든든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게 됐다. 그의 마음을 맞추려고 부단히 애쓰면서 살게 됐다. 그도 내게 마음을 맞춰 살았지만 갈수록 서로 힘이 들었다. 남들은 내 삶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난 삶이 힘들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난 왜 이렇게 괴로울까?’ ‘난 누구일까?’ ‘난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남편도 나 자신도 편안하고 자유로워지는 길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부처님 가르침에 젖어들어 지낸 세월이 10년을 넘자 한 가지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내 공부는 잘못됐다.”

종자와 식물보호제 육묘장을 함께 하면서 가게에 오는 손님들을 바꾸려고 애썼다. 손님에게 같은 것을 드려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하는 말과 행동들이었지만, 어떻게 그들에게 전달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좌충우돌 부딪히고 있었다. 참 어리석은 모습이었다. 손님과 부딪히는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고정관념이 무엇인지를 계속 살폈지만, 내 마음을 몰랐기에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할지 몰랐다.

‘난 누굴까?’ ‘이 마음이 뭘까?’ 아직 모르겠다. 난 일찍 사별한 아버지가 나를 버렸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원망을 마음 밑바탕에 깔고 살아왔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됐다. 내 근원을 원망하고 있으니, 내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내 마음을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의지하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때는 기뻐하고 아닐 때는 괴로워하는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리석은 자신이 많이 부끄럽다.

하지만 내 앞에 오는 인연을 오로지 거울로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 이제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려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조건 아닌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고 정성을 다하고 싶다. 진정으로 얼마나 충만하고 거룩한 존재인지 깊이 느끼고 깨닫는 순간까지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고 수행하겠다. 내 앞에 오는 모든 인연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발원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스승님과 부모님, 온갖 모습으로 나를 돌아보게 한 소중한 인연들에게 감사드린다.

공동기획: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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