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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나는 미인이다

기자명 조정육

미모는 현재 자신을 인정하는 곳에 존재한다

▲ 데비 한, ‘좌삼미신(Seated Three Graces)’, 180×250cm, 2009 : 세 여인이 앉아 있다.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어 몸매는 이미 망가졌다. 세월이 흐르면 더 심해질 것이다. 여인은 아무리 꽃다운 미모를 가졌더라도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길 수 없다. 그 진리를 알면서도 그녀들은 그리스 미인처럼 매끈한 미모와 몸매를 동경한다. 그러나 미모는 과거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에 있지 않다.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는 곳에 존재한다. 불성을 지닌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아름답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

“지난번 조국 교수 강의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어요.”

매끈한 미모·몸매 동경하나
육신의 쇠퇴는 막을 수 없어
우리는 불성이라는 미모 가져
젊거나 늙거나 모두 아름다워

서울에 있는 어떤 절에 강의하러 갈 때였다. 그 절의 신도 보살님 한 분이 그런 말을 했다. 조국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사람이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강의도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강의 많이 다니던데 소문과 다르게 별로였나 봐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지. 너무 완벽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줄 테니까. 조국 교수에 비해 존재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나로서는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다. 적어도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조금은 의기양양해진 목소리로 내가 묻자 그 보살님의 즉답이 돌아왔다.

“그게 아니라요. 너무 잘생겨서 얼굴 쳐다보느라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아, 잘생긴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받는구나. 살짝 우울해졌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내가 강의를 다 끝냈을 때 그 보살님이 매우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기어코 하고 말았다.

“선생님 강의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지금 저 말은 내가 강의를 잘했다고 칭찬하는 뜻일까 아니면 내가 못생겨서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뜻일까. 경우에 따라서는 정반대되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난해한 말이었다. 애매할 때는 내 마음 편한 쪽으로 해석하면 된다. 저 보살님은 아까 자신이 했던 조국 교수 얘기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한 말은 아까 했던 말과 전혀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의미로 진짜 내 강의가 좋아서 한 말일 것이다. 이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며, 왠지 그게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쳐들려고 하는 의구심을 애써 무시했다.

사람들이 나의 외모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스스로를 대단한 미인이라고 떠벌리고 다닌다. 강의하는 사람이 이 정도 외모라면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얼굴 때문에 견적을 내 본 적이 없는 모태미인이 아닌가.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렇게 나 자신을 미인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 강의하는 사람의 외모 조건은 수강생들이 강의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만약 내가 영화배우 전지현이나 송혜교처럼 눈부신 미모를 가졌다면 사람들이 내 강의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조국 교수처럼 말이다. 더구나 수강생들이 여자라면 기분까지 상할 것이다. 강의하는 사람이 얼굴까지 예쁘네. 이런 자격지심이 들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스스로를 미인이라고 자화자찬해도 청중들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 당신이 미인이면 나는 클레오파트라겠네요. 이런 눈빛을 보내며 오히려 안심하는 눈치다. 내가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환영받는 것을 보면 나의 미모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뛰어난 미모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일본의 혜춘(慧春) 스님처럼 미모가 수행에 방해가 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혜춘 스님은 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1192~1333) 때 사이쇼지(最勝寺)에서 수행한 비구니 스님이다. 그 스님이 출가할 때의 일이었다. 그녀가 출가를 결심하고 어느 절의 주지로 있는 오빠를 찾아간 것은 삼십 대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러나 오빠는 여동생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비구의 삶도 쉽지 않은데 비구니의 삶은 더욱 힘들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동생은 수행자로 살아가기에는 그 미모가 너무나 출중했다. 꽃이 있으면 벌과 나비가 날아오는 법. 본인이 아무리 정숙하게 살고자 해도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오빠는 미모가 출중한 비구니가 겪어야 할 수행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생의 출가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스님이 아니었다. 출가 의지가 확고했던 혜춘 스님은 자신의 얼굴이 문제가 된 것을 알고는 뜨거운 부젓가락으로 얼굴을 지져버렸다. 얼굴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얼굴을 지져버린 것은 선종의 2조 혜가 스님이 달마대사에게 입문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잘라서 바친 것에 버금가는 행위였다. 그 모습을 본 오빠는 여동생의 구도심이 확고한 것을 알고 삭발을 시켰다. 그리고 혜춘이라는 계명을 주었다. 혜춘 스님은 계를 받은 뒤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본바탕이 워낙 눈부셨기 때문에 얼굴에 흉터가 생긴 후에도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초발심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용맹정진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 혜춘 스님이 세상을 하직할 때의 모습도 드라마틱했다. 스님은 갈 때가 된 것을 알고서 스스로 나무를 쌓고 불을 지폈다. 그리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단정하게 앉아 비로소 육신이라는 옷을 벗고 천화했다. 그녀를 괴롭혔던 미모도 육신도 연기 속에 사라졌다. 오직 그녀가 도달한 깨달음의 세계만이 사라지지 않았다.

미모란 무엇인가.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나아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면 미인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외모에 너무 집착하고 한탄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피부가 조금만 푸석푸석해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 내가 지금 세월의 풍화작용에 부식되어버릴 외모에 집착하는가. 아무리 고운 얼굴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다. 젊음과 미모는 내가 아무리 사정하고 매달려도 때가 되면 냉정하게 돌아설 것이다. 변심한 애인보다 더 단호하게 돌아설 것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주름살이 생기고 늙는다. 얼굴의 주름살과 육신의 쇠퇴는 비싼 화장품을 발라도 막을 수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는 사라져버릴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그게 아닌데도 말이다. 화려한 외모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 외모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게 된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미의 세계는 피부에 있지 않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늙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불성이라는 미모를 지니고 있다.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불성을 싼 보자기 같은 얼굴에 집착하게 된다. 생사윤회를 벗어나려는 수행에 전념하게 되면 이까짓 외모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혜춘 스님도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얼굴을 과감히 무시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불성을 지닌 우리는 젊거나 늙거나 모두 아름답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를 미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는 이유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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