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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행일기] 정철균

기자명 법보신문

아버지 향한 원망으로
불쑥 분심 치솟아 고통
수행의 원력 삼으면서
영정 놓고 매일 108배

▲ <br><br>
50, 명현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부모에게 몸 받기 전 이 몸이 무엇인가?

오래전부터 나를 끊임없이 힘들고 괴롭게 했던 일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아버지를 향한 미움이 항상 떨쳐지지 않은 채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이었다. 술과 폭력 등으로 집안 식구들을 힘들게 하면서 내 어린 시절에 고통스러운 기억만 남게 했다는 생각에 분노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나의 주변에는 꼭 분심을 일으키는 사람이 한 두 명씩 존재했다는 것이다. 어려서 성장과정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내 전생들 업장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 주변 한 사람이 되었던지 과거 어떤 사람이 되었던지 어느 누가 정말 미워서 내가 못 견디게 분심을 일으키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2년 전이다. 주변 누구에게도, 같이 살고 있는 아내에게도 터놓고 말 못하는 이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의 고통스러운 짐들을 없앨 수 있을지 헤매다가 법륜 스님 즉문즉설을 담아놓은 책을 찾아 읽었다. 차츰 불교에 대해 여러 가지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 절 저 절 유랑하면서 문화재 관람 하듯 절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디지털대학을 알게 되어 입문반을 거쳐 신도전문과정을 공부하게 됐다. 템플스테이로 인연이 된 사찰에서 1년을 넘게 자원봉사 하면서 서서히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지워갈 수 있었다.

어느 날, 자원봉사로 절에 가서 차담을 하던 중 스님께 그 문제를 여쭈니 이렇게 답해주셨다.

“내가 미워하고 나에게 원망을 일으키는 그 사람이 어쩌면 그대를 공부시키고 수행하도록 돕고 있는지 모릅니다. 스님인 나도 가끔 어떤 사람들이 미워질 때도 있답니다. 그때 자신을 살펴보고 그 분심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수행의 원력으로 삼으십시오.”

‘스님 마음속에도 내가 생각하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있구나. 나만 그렇지 않구나. 이 마음을 극복하고 견디고 다스리는 게 수행이고 마음공부구나.’

미움과 원한의 기억만을 남기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조그만 영정을 놓고 매일매일 108배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시다가 가셔야 했는지, 왜 그렇게 가족들에게 그걸 다 풀려고 하셨는지 속으로 묻고 또 물었다. ‘이제는 내 마음에서 지워질 수 있고 지워야 한다고….’ 수행으로 내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여겨 마음공부를 했다.

불교공부를 시작하고 붓다로 살자고 마음을 잡으면서는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나의 내면, 마음자리, 진여의 자리라는 것을 찾고자 수행을 시작했다. 그간 분심, 치심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들이 내 마음자리를 몰라서 헤매는 중생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됐다. 이생에서 꼭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자는 각오를 항상 하면서 나를 살피고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올봄부터 살고 있는 동네 뒷산에서 시간 나는 대로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 난 누구였던가?’를 화두 삼아 참선을 하곤 했다. 내가 누구인지를 책속에서나 머리로 풀어내는 게 아니라 깊은 내면에서 자각해야 한다는 게 그간 불교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비록 출가수행의 길을 걷지 못하더라도 나를 찾는 수행을 쉬지 않고 해보자는 오기로 틈틈이 책을 펴고 자리에 앉거나 산속을 걸으며 오로지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옷 입고 밥 먹고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모든 장소와 순간에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움을 지각하는 이놈이 뭣고’를 화두로 붙들어 본다.

부처님 가르침 만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바라보는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어찌 보면 인생이라는 게 허망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 생에 할 일이 생겼고 하루하루가 아깝고 소중하다. 부자가 되거나 권력을 손에 쥐고 세상 위에 군림하는 헛된 망상을 꿈꾸면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이제는 무엇을 이 세상에서 해야 되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행복이 이랬다며 미소 짓는다.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게, 생사윤회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이 세상 살아가는 내 모습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공동기획: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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