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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아누룻다 비구의 출가 정신

“깨지지 않을 행복 이루고자 출가했습니다”

▲ 그림=근호

어느 날, 설법을 하시던 부처님께서는 아누룻다 비구가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하셨다. 설법을 마치신 뒤에 부처님께서 아누룻다 비구를 불러 물으셨다.

부처님 설법 중 졸은 아누룻다
안 자고 정진 몰두해 눈병 얻어
마침내 완전한 행복 경지 도달해
조용한 경책 죽비 소리로 들어야  

“아누룻다야, 너는 왜 승려가 되었느냐? 혹시 너의 집에 무서운 도둑이 들까 봐 승려가 되었느냐?”
“아닙니다, 부처님.”
“그럼 네가 승려가 되지 않으면 해치겠다고 위협한 사람이라도 있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내가 너에게 출가하여 승려가 되라고 강요한 적이라도 있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이 다시 물으셨다.

“그렇다면 아누룻다야, 너는 왜 가족을 떠나 승려가 되었느냐?”

아누룻다 비구가 대답했다.

“저는 부처님처럼 다시는 깨어지지 않는 행복을 이루고자 집을 떠나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렇다, 아누룻다야.”
하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그런 큰 목표를 세워 집을 떠나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출가를 감행한 사람으로서, 너는 출가 승려답게 열심히 공부하여 처음 세웠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아누룻다 비구를 향해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아누룻다야, 나는 네가 내 앞에서 졸음을 참지 못한 것에 대해 언짢아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 어떤 일이 생긴다고 해도 마음이 언짢아지지 않는  사람이다. 나를 기분 나쁘게 할 상황이나 사람은 없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을 이룬 여래의 경지이다.

따라서 나는 누가 나를 위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내가 세상 사람을 위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더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그 때문에 매일같이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

그렇지만 아누룻다야, 내가 설법을 할 때 너처럼 졸거나 게으르게 군다면 나의 간절한 가르침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준다고 해도 그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의 제자된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이렇게 극진하게 말씀하시자 아누룻다 비구의 마음에 크게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맹세했다.

“부처님의 말씀은 제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아프게 들려옵니다. 부처님, 저는 이후부터는 설법 시간에 절대로 졸지 않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제가 출가하던 때 세운 목표를 이룰 때까지 절대로 잠을 자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누룻다 비구를 말리셨다.

“아누룻다야, 나는 그런 뜻으로 너를 훈계한 것이 아니다. 잠을 전혀 자지 않을 수는 없다. 너는 지금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설법 시간에 졸았던 게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아누룻다 비구는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정말로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런 무리한 수행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병이 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아누룻다 비구를 불러 타이르셨다.

“아누룻다야, 몸은 음식을 먹어야 하고 눈은 잠을 먹어야 하는 법이다. 너는 잠을 자야 한다.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서까지 노력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게으름이 잘못된 길이듯이 고행 또한 잘못된 길이다. 해탈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절한 정도의 노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아누룻다 비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울면서 저를 부처님께 보내주신 부모님과 저를 위해 언제나 자비롭게 지도해 주시는 부처님 앞에서 졸았던 일이 생각나 제게는 잠깐 동안의 잠도 오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시에 가장 유명한 의사이자 부처님의 제자였던 지와카를 불러 아누룻다를 도와주도록 했다. 지와카는 아누룻다 비구를 진찰하고 나서 말했다.

“부처님, 아누룻다 스님은 지금이라도 잠을 자면 눈병을 나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잠을 자려 하지 않으니 어쩌면 좋겠는가?”
“스님 자신이 잠을 자지 않는 데는 저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걱정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아누룻다 비구는 나무 아래에 방석을 깔고 단정하게 앉아 부처님에게 배운 방법에 따라 수행을 이어나갔다. 그런 끝에 마침내 출가하던 때 목표로 세웠던, 그리고 모든 스님들과 수행자들이 도달하고 싶어하는 완전한 행복의 경지인 해탈을 성취하였다.

출가는 가출이지만 단순한 가출이 아니다. 출가는 원대한 목표를 가진 자의 가출이며, 이 때문에 부처님의 출가일은 불교의 4대 명절일 중 하나가 된다.

출가를 탈속이라고도 한다. 탈속은 속세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며, 속세와 탈속계를 분별하는 상징물은 일주문이다. 대가람 입구에 기둥 두 개를 이용하여 일자(一) 모양으로 지어져 있는 일주문 밖은 속세이고, 일주문 안은 탈속계인 것이다.

다시, 일주문은 일심문이다. 그렇다면 일심은 무엇인가. 일(一)은 하나이자 큼(大)이며, 따라서 일심은 ‘한 마음’이자 ‘한마음’이다.  마음을 하나로 통일함으로서 수행이 이루어지고, 수행이 잘 이루어지면 큰마음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일주문 밖은 여럿으로 분산된 작은 마음으로 사는 세계이고, 일주문 안은 불법승 삼보에 잘 집중된 큰 마음을 이뤄나가는 세계이다.

아누룻다 비구는 출가 정신을 놓친 채 잠시 졸았고, 그런 그를 부처님께서 조용히 경책하셨다. 그 조용한 경책을 천둥처럼 내려쳐오는 장군죽비 소리로 들음으로써 아누룻다 비구는 부처님의 천안제일(天眼第一) 제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출가 정신은 어떠한가. 출가자에게는 제대로 된 출가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 재가자에게는 출가 정신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출가자와 재가자로서의 우리 불제자들은 지금 졸고 있는가, 깨어 정진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불제자에게 아누룻다를 경책하시던 부처님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그 경책을 천둥소리로 듣는가 아닌가에 한국불교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한국 사회를 향해 속세에서는 얻을 수 없는 깊은 인식을 사자후로 토해내는 불교인의 탄생 또한 이 시대의 아누룻다가 큰 깨달음을 성취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 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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