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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마음을 허공과 같이하여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라

기자명 정운 스님

현상이 본체요 본체가 곧 현상이다

원문 : 범부들은 경계가 마음을 장애시키는데, 이는 현상이 본체를 장애하는 것이다. 그러니 경계로부터 도피하여 마음의 편안함을 구하고, 현상을 버리고 본체에만 마음을 둔다. 이 마음[본체]이 경계[현상]를 장애하고, 본체가 현상을 장애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마음을 공하게 한다면, 경계도 스스로 공해지고, 본체를 고요하게 한다면 현상도 스스로 고요해진다. 마음을 전도해 억지로 쓰지 말라. 범부들이 기꺼이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것은 공에 떨어질까 두려워서이다. 스스로 마음이 본래 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현상만을 제거하고, 마음을 제거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마음을 제거하고, 현상을 제거하지 않는다. 보살은 마음을 허공과 같이하여 일체를 모두 버려 자기가 지은 복덕에도 탐착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현상
이 모두가 불성의 전체 작용
본래 공함 알고 마음 비우면
현상 또한 저절로 공해진다

해설 : ‘경계가 마음을 장애시키는데, 이는 현상이 본체를 장애하는 것이다.’ 이하를 보기로 하자. 이 원문은 본체[마음]와 현상[경계]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본체는 ‘이(理)’를 말하고, 현상은 ‘사(事)’를 말한다. 이사(理事) 원리는 ‘화엄경’ 4법계에서도 매우 중요시되는 진리이다. 일심(一心)을 기본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법계를 네 가지 방식으로 나눈 것이 4법계이다.

간단히 보면 사법계(事法界)는 인연으로 있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차별의 현상계이다. 이법계(理法界)는 우주만유의 본래 평등한 본체계로서 본질적인 측면이다.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는 차별의 현상[事]과 평등한 본체[理]가 서로 어우러져 있어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말한다. 상대와 절대, 차별과 평등, 즉 이와 사가 원융무애한 법계이다.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란 이와 사가 무애한 것처럼 사와 사가 무애한 것을 말한다.

또한 조동종에서 본체와 현상을 다섯 단계로 나눈 조동오위(曹洞五位)가 있다. 이 조동오위는 정(正)과 편(偏)으로 구축되는데, ‘정’은 본체[理;?]이며 보편적인 세계이고, ‘편’은 현상 세계[事;用]이며 차별적인 세계를 말한다. 이 조동오위에서 마지막인 본체와 현상의 일치된 경지를 최고의 경지[兼中到]로 보았다. 조동종 2세인 조산 본적(840∼901)이 스승 동산 양개(807~869)에게서 법을 받고 몇 년을 스승과 함께 지냈다. 어느 날 본적이 떠나려고 하면서 스승에게 인사를 하니, 동산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함이 없는 곳으로 가렵니다.”
“변함이 없다면 가는 물건이 있는가?”
“가더라도 변하지는 않습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법거량도 현상과 본체의 작용이 엿보인다. 현상적으로 몸이 움직여 물리적 이동을 하지만, 본체는 변함없이 고정된 불변의 모습임을 드러내고 있다. 곧 현상은 본체를 여의지 않음이요, 본체 역시 현상을 의지해 드러난다.

본체와 현상 문제는 황벽이 속해 있는 홍주종을 비판한 종밀(宗密,780~ 841)의 사상에도 드러나 있다. 곧 본체와 작용의 문제인데, 종밀은 ‘홍주종에서는 우리들이 말하고 행동하며 생각하는 모든 행위, 즉 현상면이 다 불성의 전체작용이라고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종밀은 ‘홍주종은 불성의 작용만을 보고, 본체를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즉 물이 배를 띄워 강을 건너게 해주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어엎어 파괴해 버리는 좋지 않은 작용도 있다. 또한 파도가 치고 물결을 이루는 등 계속 움직이고 있는 작용의 물만 있다고 하지, 늘 변하지 않는 본체인 물의 습성(濕性)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과 같다고 홍주종을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종밀은 자신이 속한 하택종의 사상에서는 ‘지지일자(知之一字)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는 본체를 주장하였다. 황벽이 속한 홍주종에서는 보고 듣고 말하며 행동하는 현상적인 면을 조절하는 본체에 머물지도 않고, 그 현상적인 행위 자체에도 머물지 않는 자유로운 행위에 있다. 곧 황벽은 행위가 본체요, 본체가 행위인 ‘본체적 현상’이요, ‘현상즉 본체’인 경지이다. 그래서 억지로 마음을 전도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황벽은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해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설한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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