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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목건련과 설법1

기자명 이제열

신통제일 목건련이 유마거사 병문안을 못간 이유

“부처님은 목건련에게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고 이르셨다. 목건련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옛적에 비야리성 어느 마을에서 설법을 하고 있었는데 유마힐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건련이여! 거사들을 위해 설법을 할 때에는 당신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설법에는 중생이라는 것이 없나니 중생이라고 할 만한 때가 없기 때문이며, 법에는 나라는 것이 없나니 나라는 때를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수명이라는 것이 없나니 생사를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남이라는 것이 없나니 과거와 미래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목건련, 유마거사와 만남 고백
목건련 법문 들은 유마거사가
소승 잘못된 견해 통렬히 지적
불법엔 중생·생사 없다고 선언

목건련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에 신통이 으뜸으로 사리불과 더불어 가장 신임 받았다고 전해진다. 목건련이 어느 날 사람들을 향해 법을 설한다. 목건련이 사람들에게 설한 것은 소승의 법이다. 짐작컨대 목건련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무명과 번뇌에 휩싸인 중생들이며, 태어남과 죽음을 거듭하며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여러분은 마땅히 부처님께 귀의하여 무명과 번뇌를 끊고, 나고 죽는 고통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분명 중생은 무명과 번뇌로 인해 갖가지 고통을 받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중생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부처님의 도를 실천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말을 하는 목건련을 향해 유마거사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유마거사는 먼저 법에 중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중생에게는 본래 때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때란 무명과 번뇌를 가리킨다. 유마거사가 볼 때 중생에게 무명과 번뇌는 본래 없는 것이고, 무명과 번뇌가 본래 없으므로 중생은 이미 중생이 아니다. 목건련이 사람들을 중생으로 보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무명은 무명이 아니고, 번뇌는 번뇌가 아니며, 중생은 중생이 아닐까? 곧 무명과 번뇌와 중생이 모두 공하기 때문이다. 공의 이치에서 보면 무명도 실재하지 않고, 번뇌도 실재 하지 않으며, 중생도 실재하지 않는다. 유마거사는 대승을 구현하는 보살이다. 대승에서는 일체법이 공하다고 설한다. 오온은 물론 십이처, 십팔계, 나아가서 부처의 경지와 열반까지도 공하다고 가르친다. 공이란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유마거사는 이와 같은 공의 시각에서 중생을 바라본다.

유마거사는 이어 법에는 나라는 것이 없다고 설한다. 불교에서의 설법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불교는 나를 깨닫는 가르침이며, 나를 배우는 종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나가 종국에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중생은 오온이 연기된 것으로 오온을 나라고 할 수도 없고, 그 안에 나도 없다고 가르친다. 나라는 것은 다만 분별이고 언어일 뿐 실재하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아(無我)야 말로 나의 실상인 것이다.
다음으로 법에는 나만 없는 것이 아니라 수명도 없다. 수명이란 생사, 즉 삶과 죽음을 의미한다. 중생과 소승의 안목에서는 분명 삶과 죽음이 존재한다. 몸과 마음은 무상하여 끊임없이 변하고, 순간순간 삶과 죽음을 되풀이 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실재가 아니다. 공하기 때문이다. 살고 죽는 몸과 마음 자체가 실체 없는 공이므로 생사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이어서 유마거사는 법에는 남, 즉 대상이 없다고 말한다. 남은 나에 의해 나타나는 상대적 모습들이다. 그런데 남들은 나에게 있어 시공간의 조건을 통해 나타난다. 즉 나라는 인식기관이 남을 인식할 때에는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대승의 지혜로 볼 때에 시간과 공간 역시 공한 것들로 분별이 만들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지금 여기라는 것은 망상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남이라는 것은 본래 없다는 것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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