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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祭)가 아니라 재(齋)다

불교계 주관하면 ‘재’가 마땅
불교사상과 발원 담겨 있어
유교적 세계관의 ‘제’와 달라

지난 4월, 낙단보에서는 마애불 보존을 위한 관리동 기공식과 수륙재가 동시에 열렸다. 2010년 4대강 공사 현장에서 발견될 당시 마애불은 이미 광배 왼쪽 부분에 구멍이 나는 등 훼손된 상태였다. 고려 초기 마애불로 학술적 가치가 높았지만 4대강 공사로 인해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기에 이날 행사는 더욱 뜻깊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단 지도부와 군수 등 지역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기공식 및 수륙제’라고 큼직하게 쓰여 있는 현수막이 행사의 의미를 반감시킨 옥에 티였다.

일반인들은 물론 불교계 내부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운 용어가 ‘재(齋)’와 ‘제(祭)’다. 요즘은 많이 줄었다지만 천도제, 사십구제, 수륙제, 영산제, 공승제로 쓰는 일들이 종종 있다. 1990년대 후반 총림과 천년고찰들을 중심으로 본격화된 개산대재(開山大齋)도 2000년대 중반까지 개산대제(開山大祭)로 표기하는 곳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개산대제라고 쓰는 사찰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위령제, 다례제, 추모제 등은 여전히 혼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도재, 사십구재, 수륙재, 영산재, 개산대재가 정확한 표현이다. 불교계가 단독으로 주관했다면 추모제, 다례제, 위령제가 아니라 추모재, 다례재, 위령재로 표기해야 마땅하다. 다만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놀이의 성격이 강한 축제(祝祭)는 그대로 쓰는 게 맞다.

‘수륙재’를 ‘수륙제’로 썼다고 크게 문제가 될까 싶겠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재(齋)와 제(祭)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불교의 중도(中道)와 유교의 중용(中庸)이 얼핏 비슷해 보여도 의미하는 바가 크게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제(祭)는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을 드리거나, 돌아간 이를 추모하는 의식으로 유교문화의 영향이 강하다. 그러나 재(齋)는 전혀 다르다. 초기불교 때부터 등장하는 ‘uposatha’의 한문해석으로 ‘삼가하다’ ‘청정하게 하다’는 뜻과 함께, 죄업을 참회하고 새롭게 된다는 의미가 담겼다. 비록 발음과 의례 형식에 비슷한 점이 있더라도 인도와 중국이라는 지역적·문화적 차이가 뚜렷한 용어인 셈이다.

조계종 포교연구실이 2011년 펴낸 ‘불교 상제례 안내’에는 불교의 ‘재’가 유교의 ‘제’와 어떻게 다른지 상세히 설명돼 있다. 불교의 재는 불보살님을 모시고, 스님의 진행에 따라, 경전의 염송과 염불로 의식을 치른다. 재에는 불법승 삼보가 등장하는 것이다. 또 재는 단순한 추모의 차원을 넘어선다. 재라는 의례를 통해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겠다는 불자로서의 발원이 담겼다. 해당 영가만이 아니라 천도되지 못한 채 떠도는 모든 유주무주 고혼과 지옥중생 모두를 의례의 대상으로 삼는 점도 유교식 제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제를 지낼 때에는 고기와 술을 사용하지만 재에는 떡과 과일, 잘 우려낸 차와 맑은 물을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 이재형 국장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규정한다. 사고에 따라 행위도 크게 달라진다. 율장 곳곳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자주 언급되는 것도 언어가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제(祭)는 비불교적 요소가 강하다. 반면 재(齋)는 특정 대상을 넘어 생명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를 중시한다. 좋은 취지로 열리는 불교 행사들, 이제 그에 걸맞은 정확한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

mitra@beopbo.com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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