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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불교 역사 지우기

기자명 이병두

우리나라가 “다종교사회이면서 평화가 유지되는 세계적인 모범 사례”라며 안심하는 이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설사 현재의 상황이 긍정적이라고 할지라도 앞으로 계속 이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을까?

미국 테니시 주에 있는 하트송 침례교회(Heart-song Baptist Church) 교인들은 교회 옆에 이슬람 센터가 새로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이슬람 센터의 입주를 환영합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공사가 지연되어 라마단 기간에 맞춰 센터가 문을 열기 어려울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 교회 스티브 스톤 목사는 교회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무슬림들을 초대했다.

2001년 ‘9·11 사건’ 이후 이 소식이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고, 인도 카슈미르 주의 무슬림들도 방송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고 스톤 목사의 인터뷰도 들었다. “신(알라)께서 방금 이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는 무슬림 지도자도 있었다. 어떤 주민은 스톤 목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우리도 선한 이웃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트송 교회 회중에게 말해주세요. 우리가 미워하지 않는다고, 사랑한다고, 남은 생애 동안 그 교회를 우리가 돌볼 거라고 말해주세요.”

이슬람 센터가 완공되어 제 역할을 하게 된 뒤, 두 공동체는 지역의 노숙자들을 돕는 일을 함께하고 있다. 두 종교 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기 위해 사이좋게 땅을 내놓아 친교 공원을 만들기로 하고 진행 중이다.

하트송 교회가 뿌린 ‘이해·사랑과 연민’의 작은 씨앗이, 자칫 적이 될 수도 있었던 이들을 ‘사이좋은 이웃사촌’으로 만들고 멀고먼 인도까지 날아가 ‘희망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미국 출장 중 들렀던 뉴저지주립대학의 교내 교회를 이슬람학생회와 불교학생회에서도 언제든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개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런 아름다운 일들은 빠르고 넓게 퍼지길 바란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웃이 전해준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폭력과 약탈’로 되돌려주는 일이 종교 사이에도 숱하게 많아서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든다. 긴 항해에 지치고 먹을 것이 떨어져 아사자가 속출하고 배가 난파되어 선원들은 고기밥이 될 최악의 상황에서, 먹을 물과 식량을 전해준 원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재물(주로 황금)을 약탈하며 강제 개종을 시켰던 스페인 제국주의자들과 당시 로마 가톨릭의 ‘나쁜 전통’(?)이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경기도 여주 산북면 앵자봉 기슭에 있던 주어사는 권철신 등 서학(천주교) 공부를 하는 이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공간을 제공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주어사는 폐사가 되어 터만 남게 되었다. “천주교도들에게 강학 장소를 제공해서 폐사가 되었다”는 증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당시 상황에 비추어 “주어사 폐사와 천주교 강학이 상관관계가 있으리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가톨릭이 이 역사를 제대로 배웠다면, 고난의 시기에 사랑과 연민을 보여준 불교계에 감사해야 당연하겠지만-자신들을 살려준 원주민들을 핍박하고 약탈하며 강제 개종을 시켰던 스페인 선원과 당시 가톨릭교회처럼-한국 가톨릭은 이 주어사에 있던 스님의 비석을 무단으로 가져가고 이곳을 자신들의 성지로 하겠다며 ‘불교의 역사’를 지우려 한다.

이런 일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면 어떻게 될까. “종교 간의 평화 없이는 국가 간의 평화도 없다. 종교 간의 대화 없이는 종교 간의 평화도 없다. 종교에 대한 기초 연구 없이는 종교 간의 대화도 없다.” 가톨릭 신학자로 전 세계 종교 간 대화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 한스 큉의 명언이다.

큉의 이 말을 바꾸면 “종교 간의 평화 없이 국민화합 없다. 이웃 종교에 대한 배려와 감사 없이 종교 평화는 없다”일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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