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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란나 왕국 고도 치앙마이

부처님 향한 신심
장인 정성 더해져
세계적 유산 되다

▲ 치앙마이와 란나타이 왕국을 상징하는 대표 사찰 ‘왓 프라탓 도이수텝’ 야경. 부처님의 어깨사리가 모셔진 이곳에는 참배를 위해 찾은 타이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 ‘북방의 장미’로 불리는 이곳은 다양한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자연환경, 화려한 축제 및 고산족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태국 북방문화의 중심지다. 더욱이 해발 300m 높이에 위치한 까닭에 상대적으로 동남아의 다른 도시들보다 서늘한 날씨를 자랑한다. 해마다 100만명 이상이 찾는 치앙마이의 가장 큰 매력은 옛 란나 왕국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자와 성곽으로 둘러싸인 구도심은 ‘쁘라뚜’로 불리는 5개의 성문을 통해 신문명과 연결된다. 해자와 성곽은 신·구 문명을 연결하는 경계선인 셈이다. 그리고 치앙마이 사람들은 이 경계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란나 왕국의 역사 곳곳에 간직한
타이 북방문화 중심이자 불교성지

진신사리 모신 ‘도이쑤텝’ 비롯해
사원에는 스님들 독경 소리 여전

란나의 신심은 과거 아닌 진행형
뜨거운 타이 불심 오롯이 전해져

13세기 차오프라야 강 유역에 ‘수코타이 왕국’이 건설될 즈음 북서부 고원에도 새로운 왕국이 세워지고 있었다. 여러 소수부족을 통합한 멩라이 대왕이 1292년 몬족 왕 예바를 몰아내고 치앙마이를 도읍으로 하는 ‘란나타이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이후 치앙마이는 란나 왕국의 문화와 경제, 불교의 중심지로 역할을 수행했다. 도심 가운데 수많은 사원을 품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 소멸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란나 왕국의 역사는 채 500년을 넘기지 못했다. 계속되는 외부의 침략에 국력은 쇠락했고, 결국 아유타유 왕조와 버마의 지배를 거쳐 1775년 왕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란나 왕국은 치앙마이 곳곳에 태국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섬세한 ‘란나 양식’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남겼다.

란나 양식은 특히 건축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건물 안팎을 화려하고 세밀한 문양으로 조각한 뒤 금박 등을 이용해 아름답게 치장하고, 3겹으로 구성된 지붕 끝을 우리의 사찰 처마와 같이 살짝 들어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1345년 치앙마이 성곽 서쪽에 건립된 ‘왓 프라싱’에서 란나 유적의 특징을 만날 수 있다. ‘왓 프라싱’의 건축물 중에서도 1477년 건립된 ‘호 트라이(장경각)’는 란나의 보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티크목으로 조성된 ‘호 트라이’의 적색과 금색으로 수놓은 화려한 상감세공 장식과 날개를 펼쳐 놓은 듯한 3단 지붕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 ‘왓 프라싱’ 사자불(가운데). 법당 내부의 화려하고 섬세한 란나 양식의 장엄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타이인들에게 ‘왓 프라싱’은 또 다른 의미에서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 법당에 모셔진 ‘프라싱(사자불)’ 때문이다. 실론에서 건너온 것으로 전해지는 이 불상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의 사자와 같은 당당함을 담아냈다고 하여 ‘사자불’로 불린다. 방콕의 ‘왓 프라깨우’, 핏사눌록의 ‘프라풋타친나랏’과 더불어 태국 3대 불상으로 꼽히는 사자불은 태국의 대표 축제인 송끄란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치앙마이에서 시작된 송끄란은 법당에 좌정한 이 부처님을 밖으로 모셔 관욕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또한 사자불이 모셔진 법당 내부에는 옛 란나 사람들의 생활상이 벽화로 남아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치앙마이와 란나 왕국을 상징하는 대표 사찰을 꼽으라면 단연 ‘왓 프라탓 도이쑤텝’이다. ‘신선이 노니는 산 위의 왕실사원’이라는 의미의 이곳은 부처님의 어깨뼈 사리가 모셔진 불교성지다. 때문에 도이쑤텝은 관광객들은 물론 참배를 위해 찾은 타이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치망마이 서쪽 15km 지점, 해발 1080m에 위치한 도이쑤텝을 만나기 위해선 자동차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40여분을 달린 후 거대한 나가(뱀) 2마리가 지키는 306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 오르기가 힘들다면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도달할 수도 있다.

▲ ‘왓 프라싱’에는 과거 란나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곳에 진신사리를 모신 이야기가 흥미롭다. 란나 왕조가 세워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태국 중부 수코타이 왕국의 수마나라는 고승이 밤마다 흰 바위 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꿈을 반복해 꾸었다. 기이하게 여긴 수마나 스님은 꿈속 바위를 찾기 시작했고, 팡차라는 곳에서 흰 바위와 부처님 진신사리를 발견했다. 스님은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실 사원 건립을 요청했다. 그러나 수코타이 리타이 왕은 스님의 말을 믿지 않았고, 사원 건립 또한 허락하지 않았다. 소문은 란나에까지 전해졌다. 란나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구심점을 찾던 쿠에나 왕은 우호관계에 있던 리타이 왕에게 그 사리를 요청했고, 1368년 리타이 왕은 쿠에나 왕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쿠에나 왕은 1371년 왕실 정원이었던 곳에 진신사리를 모실 사원을 새로 건축하고 ‘왓 수안 독’이라 명명했다. 수마나 스님은 수코타이에서 ‘왓 수안 독’으로 직접 사리를 이운했다. 그런데 모셔온 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사리함의 뚜껑을 여는 순간 부처님 사리가 두 쪽이 났다. 신심 깊은 쿠에나 왕은 이 또한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했다. 두 조각 중 하나는 ‘왓 수안 독’ 쩨디에 모시고, 다른 한쪽은 흰 코끼리의 등에 태웠다. 코끼리가 가는 곳이 곧 부처님의 뜻이 닿는 곳이라 생각하고 그곳에 사리를 모시기로 했다. 코끼리는 길도 없는 산을 3일간 쉬지 않고 올라가 산 정상 부근에 멈춰 섰다. 그리고 3번을 크게 울고 3바퀴를 돌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1383년 코끼리가 죽은 자리에 쩨디를 세웠으니 바로 ‘왓 프라탓 도이쑤텝’이다.

▲ 부처님 어깨사리의 또 다른 한쪽을 모신 ‘왓 수안 독'.

도이쑤텝 중앙마당의 거대한 쩨디가 시야를 압도한다. 당초 쩨디는 7m 크기로 조성됐으나 몇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는 직경 12m, 높이 16m 크기로 커졌다. 또 7톤의 황금을 녹여 금빛으로 칠하고, 상단부는 푸미폰 태국 국왕이 보시한 다이아몬드로 장엄했다. 쩨디 네 모서리에는 거대한 우산 모양의 금세공 장식이 자리를 지키고, 주변의 금빛 찬연한 종과 불상들이 장엄함을 더한다. 여기에 연꽃을 든 타이인들의 끝없는 탑돌이 행렬은 불교국가 태국의 뜨거운 불심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늘 사람들로 붐비는 치앙마이의 여느 사원과 달리 진신사리가 모셔진 또 다른 사찰 ‘왓 수안 독’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48m 규모의 진신사리탑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화려하고 웅장하다. 사리탑 주변의 크고 작은 흰색 쩨디 군락은 란나 역대 왕들의 유해가 담겼다. 이곳은 태국 마하출라롱콘불교대학의 치앙마이 캠퍼스가 위치해 공부하는 학인스님들이 유독 많았다. 신심 깊은 타이인들이 스님들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방문을 자제하는 게 아닐 듯싶다.

▲ 700년 전 건립된 ‘왓 체디 루앙’ 대탑 전경. 치앙마이의 과거에서 현재까지 가장 큰 건축물이다.

‘왓 체디 루앙’ 또한 놓쳐서는 안 될 불교성지다. 14세기 말 건립된 이곳의 대표 유적은 법당 뒤편 웅장한 대탑이다. 원래는 90m에 달했는데 1545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상단부가 훼손돼 현재는 60m가량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현재 치앙마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일 뿐 아니라 란나의 역사상 가장 높은 건축물로 남아 있다. 700년 전 이 같은 규모의 탑을 쌓을 정도로 강력했던 란나 왕국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법당에는 항상 스님들의 경전 읽는 소리가 가득하다. 사진은 ‘왓 체디 루앙’ 법당에서 학인스님들이 공부 중인 모습.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곳 ‘왓 체디 루앙’ 동쪽 벽감에 ‘왓 프라깨우’의 에메랄드 불상이 안치돼 있었다. 1468년 안치됐던 불상은 지진으로 인해 1551년 란나의 영토였던 루앙프라방으로 옮겨졌다. 이후 1778년 다시 태국으로 넘어와 방콕 아론사원에 잠시 머물다 ‘왓 프라깨우’에 모셔져 현재 태국왕실의 상징이 됐다. 현재 애메랄드 불상이 위치했던 동쪽 벽감에는 1995년 란나 건국 700주년을 기념해 조성된 흑옥(黑玉) 불상이 안치됐다. 이밖에 ‘왓 체디 루앙’에는 치앙마이 주와 도시를 지켜주는 수호정령과 같은 돌기둥 ‘사오 인타킨’이 모셔진 신성한 장소이기도 하다.

치앙마이의 법당은 모두 동쪽을 향해 있다. 란나인들이 일궈낸 화려한 유물들은 떠오르는 태양 빛으로 찬란히 빛나며, 스님들의 경전 소리와 함께 오늘도 사원을 장엄한다. 란나의 뜨거운 신심은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태국 치앙마이=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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