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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부산 강서구 길상사

이주노동자 고된 삶 보듬는 고향 같은 도량

▲ 부산 길상사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법회는 물론 전통문화를 접목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들의 한국생활 적응을 돕고 있다.

길어진 여름 해가 저물 무렵. 오토바이나 자가용을 함께 탄 이주노동자들이 낮은 속도로 마을에 진입하는 풍경을 부산 강서구 송정동 신촌마을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마을을 지나 봉화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길상사(주지 자인 스님)다. 이제 막 일을 마친 청년들이 서둘러 절을 찾아온 이유는 바로 이곳 길상사 1층 법당에 스리랑카 부처님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길상사 저녁예불도 끝이 난 시각, 일과를 마무리한 이주노동자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스리랑카의 전통방식에 따라 팔리어 예불을 올릴 때면 길상사는 어느새 고향의 법당과 다름없는 공간이 된다.

기도할 사찰 찾던 불자들에게
신행생활 하도록 지장전 개방
스리랑카 불상 모셔 친근감도
지역 어르신 봉양활동도 전개

신촌마을은 대부분이 논밭인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소박한 시골 절 길상사가 이주노동자들의 고향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도심과 멀지 않은 위치가 한몫했다. 부산 하단오거리와 진해 용원동이 차량으로 각각 10분이면 닿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기, 삼성자동차 등 부산의 굵직한 기업이 모여 있는 녹산공단도 10~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위치다.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머무는 회사와 집 중간에 길상사가 놓여있는 셈이다. 길상사의 넉넉한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본업과 잔업, 야근까지 해야 하는 고단한 삶에 신행은 물론 휴식할 수 있는 장소로 길상사만한 곳이 없다.

‘아버지’와 같은 자인 스님과 ‘이모’ ‘삼촌’으로 불리는 신도들의 온정도 한몫한다. 자인 스님은 부산 도심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2005년 10월 길상사를 개산했다. 이주민에 대한 관심은 10년 전 사찰을 찾아온 한 외국인노동자에게 차를 대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휴일을 맞아 기도할 사찰을 찾던 그는 고향에서부터 불심을 지켜 온 아시아권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이일을 계기로 그들의 동료와 친구들이 잇따라 길상사를 찾았고, 결국 2009년 이들을 위한 정기법회를 시작했다.

길상사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한글학교, 서예교실, 다도, 명상 등 불교와 전통문화를 접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길상사 후원모임 ‘연등회’도 함께 팔을 걷어붙였고,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봉사모임 ‘관음회’도 결성돼 법회를 지원하고 있다. 신도들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삼사순례도 개방했다. 전국의 유명 사찰을 순례하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에겐 신행 이상의 재충전과 추억을 담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별도의 버스를 마련해 논산 쌍계사 등을 순례했다.

▲ 넉넉한 모습의 길상사 전경.

길상사는 단순히 법회를 개설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언제든 절에 찾아오길 바란다”며 지장전을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하고 24시간 개방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지난 2013년 스리랑카에서 조성된 불상을 길상사 지장전에 봉안하고 퇴근 후나 공휴일이면 자발적으로 길상사를 찾고 있다.

더불어 신촌마을 주민들과의 유대관계도 돈독하게 했다. 법회 후에는 마을 경로당에 과일공양을 올리고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을 기원한다. 불편하고 위험했던 마을 진입로도 길상사가 앞장서 새로 포장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마을에서는 차량의 속도를 낮추고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하도록 지도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신촌마을 주민들로부터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길상사는 신도들을 위한 법회에도 소홀함이 없다. 음력에 맞춘 대중법회 뿐만 아니라 일요법회도 계획 중이다. 최근에는 생전예수재 및 백중 기도주간을 맞아 100일 특별정진을 이어가고 있다. 길상사 사부대중은 오전 4시, 오전 10시, 오후 6시 예불에 이어 1시간 30분 동안 불공을 올리며 마을의 발전과 이주노동자들의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축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길상사는 우리말과 팔리어 예불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축원한다.

잔잔히 울려 퍼지는 염불성 아래 신촌마을 오곡백과가 여름을 재촉하며 무르익어가고 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방인 아닌 신심 지극한 불자들이죠”

부산 길상사 주지 자인 스님

 
“모국을 떠나 타지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신심을 갖고 신행활동을 이어가는 이주노동자 청년들이 소박한 일 하나에도 크게 기뻐하고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신도들도 마을주민들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 돈독한 가족이 되는 것 같습니다.”

부산 강서구 길상사 자인<사진> 스님은 매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정기법회를 봉행하면서 변화된 사찰의 풍경을 설명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10년 전 한 외국인노동자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이제 길상사와 이주노동자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자인 스님은 “고향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이 국제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기도 하고, 사업장 관계자들이 직접 사찰에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경우도 많다”며 “그만큼 깊은 불심으로 신행활동을 이어가는 이주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법회에 동참했고, 신도들이 물심양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소외계층을 위한 관심도 이어왔다. 부산 사하구서 활동할 때 동참한 사하사암무료급식소 봉사활동을 이곳으로 이전한 후에도 지속하고 있다. 또 부산 해동고 학생들을 위한 ‘해동원효장학회’ 후원과 부산 강서구청 자문위원, 강서경찰서 경승, 생명나눔실천 부산지역본부 부본부장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스님은 “사찰 재정의 3분의1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회향한다는 서원을 가지고 활동하다보니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꾸준히 주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는 신행과 봉사뿐 아니라 젊은 불자들을 위해 문화활동 등을 기획해 사찰에서 다양한 교육과 체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끌겠다”고 발원했다.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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