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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서유진

기자명 김영욱

성도(成道)의 흔적을 남기다

▲ 서유진 作 ‘길상초 대좌(吉祥草臺座)’ 현상모사, 80×75cm, 2015.

사문 싯다르타가 마가다국 라자가하(王舍城) 근방 네란자라(尼連禪) 강기슭에 있는 핍팔라(pippala) 나무 밑에 정각한지 어느 날. 음력 12월8일, 미혹(迷惑)으로부터 진리를 찾았다. 성도(成道)의 진리, 바로 ‘연기(緣起)’다. 이때 법열 가득한 말씀은 ‘자설경(自說經)’의 ‘보리품(菩提品)’에 전한다.

스미소니언 방문 중 불화 흥미
부처님 가르침 끊임없이 고민
연기의 의미 대좌를 통해 표현

‘일구월심 사유하던 수행자에게 모든 존재가 밝혀진 그날, 그의 의혹은 씻은 듯 사라졌다. 연기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씀은 게송이 되고, 곧 성도의 기록으로 회자되었다. 붓다에게 그늘을 만들어준 핍팔라 나무는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리수(菩提樹)’가 되고, 이내 성도를 뜻하는 우주축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붓다 아래에 깔린 이름 모를 풀은 ‘길상초(吉祥草)’가 되고, 풀방석이 놓인 자리는 성도의 흔적인 ‘대좌(臺座)’의 기원이 되었다.

서유진은 붓다가 대좌 위에 가부좌하고 정면을 바라보는 전형의 도상에서 벗어나 성도의 흔적이 머문 자리인 대좌에 주목했다. 중국에서 현상모사에 주력하던 그는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 명·청 시대에 제작된 불화 자료들 보았다. 그 가운데 붓다가 길상초 방석 위에 앉아있는 불화를 보고 대좌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길상초 대좌’는 붓다가 연기의 진리를 깨달았던 길상초의 방석이 놓인 대좌를 현상모사한 그림이다. 무려 1년의 공력이 담긴 초도작이다. 작가는 연기를 깨닫던 그 순간의 흔적을 대좌에서 찾았다. 하지만 대좌만을 그리지 않았다. 대좌와 그 주변의 모든 현상을 온전하게 묘사했다. 대좌 너머의 넘실거리는 파도, 대좌 주위에 가득한 상서로운 구름 등 주변 현상을 빠뜨리지 않고 화면에 담아내었다. 대좌 아래에는 작가의 붉은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그의 호인 ‘혜선(?船)’처럼 진리를 밝히기 위해 아득한 구름 위를 떠다니는 배인 듯하다. 화면에서 붓다의 모습은 생략되었다. 길상초에 피어난 연꽃 사이로 흘러내리는 붉은 가사를 보고 붓다의 존재를 인식할 따름이다.

작가는 존재와 다른 존재와의 관계, 그에 비롯되는 인과와 상의성, 즉 연기에 관한 나름의 해석을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연기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이다. 이는 범어 ‘프라티트야삼무파다(prat?tyasamutp?da)’를 그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모든 존재는 여러 원인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된다는 것을 말한다.

“깨달음을 얻었던 그 순간의 붓다는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 보리수, 편안한 방석이 되어 준 이름 모를 풀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던 크고 작은 생물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붓다의 존상과 협시, 그리고 대좌의 도상 모두 상호의존으로 구현된 것이 아닌가? 나는 이 도상들이 상의적인 작용을 통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붓다가 깨달은 진리인 ‘연기’를 대좌에서 모색한다. 즉 그의 작품에서 대좌는 연기의 진리가 이루어진 성도의 흔적이자, 붓다가 남기고 간 자취이다.

서유진은 곧 중국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서너 해가 지난 뒤 첫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오랜 시간 수행한 법도(法道)의 흔적이 대좌에 고스란히 남겨져 대중들에게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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