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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복지관 여직원 절규, 배심원 마음 흔들다

  • 사회
  • 입력 2017.07.06 23:06
  • 수정 2017.07.10 13:34
  • 댓글 25

▲ 7월4일 홍갑표 전 원종복지관장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계약직 이은주 사회복지사의 국민참여재판이 인천지법 413호 법정(재판장 이영광)에서 열렸다.
“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7월4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인천지법 413호 법정(재판장 이영광). 판사의 선고에 10시간 넘게 진행된 재판 내내 꼿꼿함을 잃지 않았던 피고 이은주씨가 책상에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과 시민들은 한동안 그의 흐느낌을 묵묵히 지켜봤다. 잠시 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눈가엔 여전히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그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법정을 찾아준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7월2일 인천지법 국민재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
전 원종복지관장이 형사고소
‘임산부에 비판 글 강요’ 확인
“비정규직‧임산부 고통 외면”

사회복지법인 석왕사룸비니(이사장 영담 스님) 산하 부천 원종종합사회복지관에서 계약직원으로 근무했던 이씨가 법정으로까지 내몰린 것은 지난 2015년 4월 복지관 내에서 발생한 성차별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복지관의 한 간부가 임산부 직원을 향해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한다”는 말을 했고, 이를 들은 이씨는 해당 간부에게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해당간부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농담 한마디에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이대로 넘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자칫 복지관 내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성차별적 발언이 만연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씨는 당시 복지관 관장이었던 홍갑표씨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복지관 차원에서 재발방지와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 2016년 3월8일 이은주 복지사가 부천 원종종합사회복지관(관장 최유호) 앞에서 성차별 인권침해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복지관측은 서둘러 해당간부의 발언에 대해 “직원들 사이에 주고받은 농담이었을 뿐 임산부에게 상처를 줄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임산부 직원은 “‘농담이었다’는 말로 사건을 무마시킬 수 없다”며 문서화된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이씨 역시 복지관측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촉구하며 임산부 직원을 위해 적극 나섰다.

그러나 이 일로 이씨는 복지관 측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히고 말았다. 당시 이씨는 복지관에서 많은 시간을 필요로하는 장기사업을 전담해오고 있었기에 계약연장은 당연시됐다. 그러나 복지관 측은 계약기간이 1달여 남은 이씨에게 “더 이상 계약연장은 없다”고 통보했다. 사실상 보복성 인사였다.

이씨는 만감이 교차했다. 불교의 자비정신을 사회에 회향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석왕사룸비니 산하 복지관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사건이 생긴 것도 문제였지만,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직원을 무참히 해고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씨는 자신과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시민단체와 연대해 부천 석왕사를 찾아 이사장 영담 스님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석왕사도 원종복지관측도 묵묵부답이었다. 이씨는 이런 석왕사와 원종복지관측의 부당함을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알렸다.

▲ 이은주 복지사는 2016년 1월 홍갑표 원종복지관 관장이 덕유복지관 관장으로 발령 받은 후부터 매주 월·수요일 덕유복지관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자 원종복지관측은 이씨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원종복지관측이 이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민형사를 합쳐 모두 4건이나 됐다. 허위사실에 관한 명예훼손은 모두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모욕에 관한 혐의는 기소됐다.

이날 3건의 모욕사건이 병합돼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측 증인으로 나온 홍갑표 전 관장과 복지관 간부는 “피해 당사자였던 임산부 직원은 ‘이씨가 자신의 동의 없이 말을 하고 있다’는 글을 직원 카톡방에 남겼었다”며 “이씨의 행동은 임산부 직원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씨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로 원종복지관이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날 피고 측 증인으로 나온 임산부 직원은 “나를 도와주다가 피해를 받은 이은주 선생님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법정에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가 직원 카톡방에 올린 글은 복지관 간부가 자기 방으로 불러 강요에 의해 쓰게 된 것”이라고 말해 법정을 술렁이게 했다.

이은주씨는 최후진술에서 “이번 사건은 직원들이 말을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가 아니라 직장 내 성차별적 인식으로 생긴 문제”라며 “이런 인식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문화를 가진 일터를 만들고자 용기를 낸 복지사를 복지관은 조직적으로 왕따를 시키고, 임산부를 이용해 계약기간을 늘리려는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은 긴 심문절차가 끝나자 배심원들의 평결을 위해 휴정을 선언했다. 그리고 1시간 뒤 배심원들은 피고 이은주씨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를 결정했다. 배심원들은 “피고인과 복지관장은 갑과 을의 관계로, 그 사이에서 피고가 피해자로써 저항할 수 있는 행위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피고가 SNS에 글을 올린 것은 사실상 정당방위에 가깝다. 또 그 표현의 정도도 심하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 이은주 복지사가 부천 석왕사에서 영담 스님 면담과 원종복지관 문제 해결을 염원하는 108배를 올리고 있다.
판결 직후 이씨는 “종교법인에서 운영하는 복지관이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는 일을 한 개인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일에 대해 복지관 측은 꼭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2년 동안 법인이사장인 영담 스님에게 간곡히 대화를 요청했지만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다”며 “사회적 약자인 임산부와 비정규직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누구를 상대로 포교를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399호 / 2017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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