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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7억원 보시하고도 미안해 한 노보살

기자명 조정육

누가 뭐래도 자신의 길 걸어간 진실한 불자

▲ 박국영, ‘roses’, 162×112cm, oil on canvas, 2016 : 길거리를 걷다가 어느 집 울타리에 핀 장미꽃을 보면 저절로 발길을 멈추게 된다. 묵직한 담장 대신 고운 장미를 심어 울타리 안과 밖의 경계를 없앤 주인의 마음이 장미보다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꾸어가는 아름다운 세상. 그곳은 극락이나 천국이 아니라도 살만한 동네가 될 것이다. 그저 울타리에 장미꽃을 심으면 된다.

여러 지역에 강의를 하러 다니면 좋은 점이 참 많다. 강의가 아니라면 평생 갈 일이 없었을 곳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지역을 벗어나 낯선 곳에 가면 우리 동네에서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밀려온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산세도 다르고 건물도 다르고 도로와 정류장의 교통안내판도 다르다. 사람들의 말투와 생활습관과 인심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언어와 생활방식을 지닌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분모 때문에 낯설다는 느낌보다는 친근함이 더 강하다. 우리 동네와 낯선 동네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고 공부다. 기왕 어렵게 간 걸음인 만큼 그 지역의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박물관이나 예술가의 작업실을 탐방하는 것도 역시 그렇다.

7억원은 교사 봉직하며 모은 재산
그럼에도 처음 발원에는 못미쳐
친척들 돈달라고 해도 보시실천
스스로 세운 원력이 굳건하다면
항상 스스로의 길에 확신 가져

이런 즐거움이 아무리 크다 해도 사람을 만나서 감동을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강의가 끝나면 의례히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강의에 대해 개인적인 소감을 얘기하는 사람, 책을 들고 와서 사인을 요청하는 독자, 먼 곳에서 소문을 듣고 호기심으로 찾아 온 사람 등 다양한 청중들을 만나게 된다. 나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의 얘기를 들으려고 귀한 시간을 내서 오신 분들이니만큼 모두 감사하고 소중하다.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등에서 식은땀이 날 때가 많지만 그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앞으로 더욱 노력하고 정진해야 될 이유다.

이번 김해도서관 인문학 강의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울림을 준 기회였다. 최근의 인문학 강의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세 번이나 다섯 번 등 연속강의를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의 수준이 높아져 깊이 있는 내용을 진행해도 될 정도로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김해도서관 강의도 토요일마다 세 번을 연이어서 했다. 세 번을 하다 보니 어느새 강의를 듣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강의 때부터는 쉬는 시간에 음료수를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에서 과일주스를 만들어서 가져다 준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세 번째 강의를 끝냈을 때는 서로가 아쉬움을 느낄 만큼 정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강의를 마친 후에는 수강했던 몇몇 분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모두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는 나이가 조금 어린 여성들이었다. 처음 만나 식사를 해도 불편하지 않고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편할 수 있는 나이의 사람들이었다. 그 중의 한 분이 잊지 못할 얘기를 해주었다. 이런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음은 그분에게서 들은 내용이다.

어느 절의 노보살님이 주지스님을 찾아가서 7억원을 보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큰돈을 보시하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왜 그랬을까. 그녀는 학교 교사로 정년퇴직을 했는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독실한 불자였던 그녀는 젊었을 때부터 한 가지 원력을 세웠다. 죽기 전에 10억원을 모아 부처님 전에 보시하겠다는 원력이었다. 재테크 능력도 뛰어나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돈도 제법 모았다. 그런데 특별히 수입원이 없는 평범한 여인으로서 돈을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7억원 이상을 만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슬하에 자식도 없는 그녀가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안 일가친척들이 그 돈에 눈독을 들였다.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그녀와 조금이라도 핏줄로 얽힌 사람이라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전부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어떤 사람은 죽는 소리를 하며 돈을 빌려 달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협박에 가까운 폭언을 퍼부으며 돈을 강요했다. 돈 모으기도 힘들고 지키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그녀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부처님 전에 보시하기로 원력을 세운만큼 그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돈을 정리해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10억원을 보시하겠다는 원력을 수정해 7억원만 보시하기로 결정했다. 보시하기 전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공증증서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가친척들이 찾아와 돈을 요구할 때면 자신이 빈털터리가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증서였다. 돈이 없으면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7억원이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녀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것이 그녀가 7억원을 보시하면서도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한 이유였다.

노보살님에 관한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새삼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수입의 10%를 보시하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종교에서 십일조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였다. 결심은 훌륭했으나 수입은 일정치 않고 쓸 곳은 많아 십 퍼센트를 보시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들어올 돈을 예상하고 미리 보시부터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의 통장에는 잔고에 ‘0’이 찍힐 때도 많았다. 이런 나의 결심은 누구에게 허락 맡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나 자신과의 약속일뿐이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인 만큼 갈등도 없지 않았다. 수입의 일 퍼센트도 내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갈등이었다. 지금까지는 독하게 마음먹고 잘 지켜오고 있는 편이다. 잘 지켜오고 있다고는 하나 흔연한 마음으로 보시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저 내 안에 있는 탐심을 없애고 싶다는 마음과 사람 노릇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더 강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보살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의 얘기를 듣고 알았다. 세상에는 수입의 일 퍼센트도 내지 않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입의 전부를 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그런 사람들은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정한 길을 확신에 차서 걸어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얘기를 들려준 분은 갈등하는 나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일부러 점심을 산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을 것이다. 이런 만남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강의하러 갈 때마다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결국 나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강의하러 간다. 가는 곳마다 내게 깨우침을 주신 수많은 선지식들께 감사드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간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99호 / 2017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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