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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화만처·수봉고처

기자명 김성순

달구어진 철판 위에 죄인 눕히고
달군 철판 덮어 잿가루로 만들어

대규환지옥의 열네 번째 별처지옥인 화만처(火鬘處)는 ‘화만(火鬘)’이라는 이름 그대로 온통 불꽃처럼 뜨거운 열의 지옥이다. 인도에서 여름을 지내본 이라면 지옥 교설에서 유난히 열 지옥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사이는 한국의 여름도 도시의 열섬현상이나,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만만치 않게 뜨거워져서 더더욱 이 지옥 교설에서 말하는 환경이 실감이 난다.

법 어기고 발뺌하면 가는 지옥
교단 내부 규범 수호 위한 방편
삼보에 보시 약속 안 지키면
고슴도치처럼 몸에 바늘 박혀

대체 어떠한 고통들로 채워진 지옥이기에 이곳에 ‘화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일까? 이 화만처의 옥졸은 뜨겁게 달구어진 철판 위에 죄인을 눕히고 다시 그 위에 달군 철판을 덮어서 죄인을 그야말로 붉은 꽃 색깔을 한 ‘잿가루’로 만든다. 철판을 떼어내면 양면에 붙어있는 지방과 힘줄, 뼈의 가루들이 다시 원형대로 달라붙어서 살아나게 되고 끝없이 반복해서 고통을 받게 된다.

죄인들은 이 형벌이 너무 두려워 다른 곳으로 달아나서 이곳저곳 구원해줄 곳을 찾다가 이내 잿물의 강으로 뛰어들게 된다. 죄인들도 뜨거운 재의 고통을 모르지는 않지만 자신을 잡으러 쫓아오는 옥졸들을 피해서 어쩔 수 없이 잿물의 강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이 재의 강에서는 죄인들의 온 몸이 그 열기에 녹아서 마치 치즈처럼 흐물흐물 해지지만, 여느 지옥이 그렇듯이 절대로 죽지 않고,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서 그 고통을 반복해야 한다.

또한 이 화만처의 곳곳에서 불타고 있는 대숲이 지옥 안의 죄인들까지 모두 태우지만 전생의 죄업을 다 지울 때까지는 어디고 이들이 도망하여 피할 곳도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죄의 업력으로 인해 이 뜨거운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일까.

‘정법념처경’에서는 이 화만처에 대해 조직에 속한 인간이 내부의 규율을 어기고도 거짓으로 자신의 죄를 발뺌하는 경우에 떨어지게 되는 지옥으로 설명하고 있다. 거짓말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죄업에 연관된 지옥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가 아무리 초세간의 종교라 해도 그 구성원들은 여전히 조직 혹은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교의의 차원에서 내부적 규범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견제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 중의 하나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음으로 대규환지옥의 열다섯 번째 별처지옥인 수봉고처(受鋒苦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수봉고(受鋒苦)’라는 이름에서부터 벌써 뭔가 날카로운 쇠로 인한 고통이 짐작되는 이 지옥은 불·법·승 삼보에 보시를 약속했다가 “그런 적이 없다”고 번복하여 낭패시키는 이들이 떨어지게 되는 곳이다.

이 수봉고처에서는 옥졸들이 가늘고, 길며, 불에 타고 있는 바늘로 죄인들을 늘 콕콕 찌른다고 한다. 죄인들이 그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 이번엔 마치 화살통 안에 가득 꽂힌 화살처럼 입 안 가득 바늘이 차서 혀를 찌르게 된다. 또한 온 몸에 고슴도치처럼 바늘이 박히게 되는데, 그 바늘의 개수가 터럭의 숫자와 같다고 한다.

죄인들이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못 이겨 땅에 쓰러지면, 그 쪽의 바늘이 살 속으로 파고들면서 더한 고통에 시달리지만 온 몸에 바늘이 박혀 있는 동안은 비명을 지를 수조차 없다. 혹시라도 바늘이 몸에서 빠지면 소리는 낼 수 있지만, 박혀 있으면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 교설에 따르면, 보시와 관련한 거짓말이나, 기부에 관련된 허언을 할 때마다 후생의 자기 몸에 바늘을 한웅큼씩 꽂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수봉고지옥의 죄인들이 전생의 죄업을 고통으로 다 갚은 후에, 다른 작은 선업이 익어서 혹여 인간 세상에 다시 날 수도 있지만, 후생에서는 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못하며, 끝내 걸인의 삶을 살게 되는데, 구걸을 해도 줄 사람들이 자주 변심하는 까닭에 몹시 힘들다고 한다. 이는 전생에 그가 보시를 약속했다가도 거짓말을 하며 번복했던 좋지 않은 업력 때문일 것이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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