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6. 만공 스님과 선학원 유교법회

기자명 이병두

‘비구승이 조선불교 주인공’ 선언

▲ 1941년 3월4일부터 10일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열린 유교법회. 맨 앞줄에 앉아있는 스님들 중 왼쪽에서 네 번째가 만공 스님이다.

1941년 3월4일부터 10일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열린 유교법회(遺敎法會, 이하 법회)는, 당시 전국의 승려 6000여명 중 독신 비구승이 300여명에 지나지 않던 시절에 “조선 불교의 전통을 살리겠다”며 비구승 34명이 서울 중심가에서 개최한 대회였다. 총독부 지원을 받는 ‘권력’과 ‘세속 생활’의 맛에 물든 승려들을 상대로 당당하고 의연하게 “우리가 조선 불교의 주인공이다”며 선언을 하였던 것이다.

1941년 3월 중앙선원서 열려
‘경허 계승자’ 만공스님 주도
끝까지 선사 의연함 보여줘

당시 상황에서 이 ‘법회’ 개최는 누가 보아도 ‘달걀로 바위 깨기’로 여겨질 정도로 무모했다. 그렇지만 스스로 ‘깨져 사라지는 달걀’이 되기로 자처하였던 서른넷의 ‘의지와 원력’이 모여 결국 견고한 바위와 같았던 ‘친일 대처승’의 장벽을 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법회 명칭을 ‘고승법회’라고 하였지만, 권력을 갖고 있던 본산 주지들과 총무원 측이 자기 콤플렉스 때문이었는지 이를 강하게 비난하며 방해공작을 펼칠 우려가 있어 ‘부처님과 역대 조사가 전해준 가르침을 받들어 모시는 법회’라는 뜻의 ‘유교법회’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 대회를 주도한 인물은 만공·한영·동산 스님 등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위 사진 맨 앞줄에 앉아있는 스님들 중 왼쪽에서 네 번째의 만공 스님에게 주목하게 된다.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은 경허 스님을 이어 꺼져가던 한국 선(禪)을 중흥한 대표 인물일 뿐 아니라, 1920년대 초에 수덕사 정혜사와 서산 간월암 등의 재산을 출연하여 선학원 설립을 주도하였고 선사들의 경제 자립을 도모하는 모임인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 운동도 적극 펼쳤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서도 만만치 않은 그 기백이 느껴지지만, 스님은 실제 삶에서 선사의 기백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1937년 마곡사 주지 시절, 조선총독부 주최로 열린 ‘31본산 주지회의’에서 총독부가 조선불교를 일본불교와 똑같이 만들겠다는 주장을 내놓자 이에 호통을 치며 공박하였다고 하며, 당시 회의를 참관하던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에게 “전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말로는 독실한 불자라 하나 조선의 불교를 파괴시켰으므로 교리에 따라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그를 우리가 지옥에서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하겠는가?”라며 그의 명복을 빌어주자고 하면서 미나미 총독을 질타하였다.

이 정도의 기백을 가진 분이니 명실상부한 ‘경허의 계승자’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스님은 1946년 10월20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만공, 70년 동안 나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느라 수고 많았네”라고 중얼거린 뒤 잠들 듯이 열반에 들어, 마지막 떠나는 모습에서도 선사의 의연함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스님이 떠나가신 지 70년이 지나갔지만 스님의 치열한 구도 정신과 의지는 사라진 채, 스승 경허 스님과 스님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덕숭산 수덕사와 스님이 설립을 주도하고 유교법회를 개최하여 한국 선의 전통을 세우려고 했던 선학원은 정혜사·간월암 소유권을 둘러싸고 싸움을 이어가고 있으니 세상을 훤하게 꿰뚫어보던 스님도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게 될 줄은 내다보지 못하였던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