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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신현득의 내가 사랑한 동시
13. 오규원의 ‘여름에는 저녁을’달빛 깔고 앉아 달빛 담긴 밥 먹는
시골 여름 밤 행복한 가족 이야기
신현득  |  shinhd70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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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7  17: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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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정서는 시골이 좋다. 시골의 한낮보다는 달밤이 좋다. 가족이 달빛 아래에서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마당에다 멍석을 펴고 저녁을 내어다 먹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손자 손녀가 앉았다. 온 식구가 둘러앉았다. 여기에 더 좋은 화목이 없다. 여기에 더 좋은 평화가 없다.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자·손녀
온 식구 둘러앉은 저녁 마당
소 가족도 외양간서 밥 먹는
모습으로 화목·평화 그려내

 

여름에는 저녁을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숲 속에서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밤의 발자국처럼
잔잔한
풀잎들.

마을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어문각 ‘신한국문학전집, 아동문학 선집’(2), 1975’

저녁을 마당에 내어다 먹는 이날, 내어온 음식이 타래가 긴 밀국수라면 더 좋을 것이다. 들에서 가꾼 밀이 국수 타래로 밥상에 오르고, 노동을 끝낸 소 가족까지 외양간에서 저녁을 같이 먹는다. 그 이상의 평화가 없다.

멍석 위에 환한 달빛이다. 밥상 위에 그득 달빛이 놓인다. 그릇에 가득 가득 달빛이 담긴다. 달빛을 깔고 앉아, 달빛이 담긴 저녁을 먹는다. 국수 꼬리에 감기는 달빛을 꿀떡 꿀떡 맛나게 넘기고 있다. 맛나는 달빛!

먼 하늘, 달에서 내려주는 달빛이지만 그 양이 넉넉하다. 하나의 마당에 가득, 한 가족 앉은 자리에 가득하다. 마을에 가득하다. 온 들판에 가득, 온 산에 숲에 가득하다.

달빛의 마술은 잠재우기다. 숲에서 바람을 잠재운다. 숲을 잠재운다. 들판을 잠재운다. 잔잔한 풀잎과 곡식 포기를 잠재운다. 마을을 잠재운다.

세상 모두가 달빛을 덮고 콜콜 잠드는 시간은, 저녁상 물림이 끝나고, 할머니 옛 얘기도 끝나고, ‘이태백이 놀던 달아’의 동요도 끝나고, 모깃불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을 때다. 콜콜 잠재우는 달빛!

지은이 오규원(吳圭原, 1941~2007)의 본명은 규옥(圭沃)이다. 밀양 출생으로 1970년대의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1963년에 낸 옥미조, 하계덕과 어우른 3인 동시집 ‘소꿉동무’가 출발이었다.

동시로 문학을 출발한 오규원은 문학성이 있는 동시 작품을 썼다. ‘분명한 사건’(1971) 등 시집과 시 이론서 ‘현대시 작법’(1990) 등이 있다. 유작 동시집 ‘나무속의 자동차’(2008)를 남기기도 했다.

신현아동문학가·시인shinhd7028@hanmail.net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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