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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이제열의 파격의 유마경
25. 걸식과 가섭-상빈부 관계없이 평등한 것이 대승불교 자비
이제열  |  yooma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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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7  17: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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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대가섭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위문하여라. 가섭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의 병문안을 갈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가난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유마힐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대가섭이여, 자비심을 지니지 못하고, 부자 집을 버리고 가난한 집만 찾아가 걸식해서는 안 됩니다. 먹는다는 생각이 없이 밥을 빌어야 하며 화합상을 깨뜨린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받아야 합니다.”

보시로 복 짓게 하기 위해
가난한 집 탁발했던 가섭
빈부 따지는 자체가 분별
차별심 내지 않는 게 불법


대가섭은 부처님 제자 중에 두타행(頭陀行)이 제일 뛰어난 제자이다. 두타(dhuta)는 ‘흔들어 털어버린다’에서 비롯된 용어로 의식주 생활로부터 탐욕과 집착을 버리기 위한 수행을 의미한다. 두타행에는 모두 12조항(혹은 13조항)이 있어 12두타행이라고 부른다. 12두타행은 다음과 같다. ①인가와 떨어진 조용한 숲 속에 머문다. ②걸식을 한다. ③걸식할 때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④하루에 한 번만 먹는다. ⑤과식하지 않는다. ⑥점심 이후 과실즙이나 꿀 등도 먹지 않는다. ⑦헌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는다. ⑧삼의(三衣)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⑨무상관에 도움이 되도록 무덤 곁에 머문다. ⑩나무 밑에 거주한다. ⑪지붕이 없는 곳에 앉는다. ⑫단정하게 앉고 눕지 않는다.

비구는 18가지 지물을 반드시 지녀야 하는데, 두타 18물이라고 한다. 또 삼의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두타대(頭陀垈)라는 자루를 목에 걸고 다닌다. 초기에는 12두타행이나 두타 18지물이 지켜졌으나 나중에는 산이나 들, 세상을 편력하며 고행하고 수행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스님들이 행하는 만행도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가섭존자는 누구보다도 이를 철저히 지켰으므로 두타제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가섭존자는 나름의 특별한 탁발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마을에 들어가 음식을 얻을 때 일부러 부잣집은 가지 않고 가난한 집을 찾았다. 당시 사람들이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음식을 보시하면 그 공덕으로 복을 얻는다는 믿음이 강했고, 이 때문에 가섭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을 짓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유마거사는 부잣집과 가난한 집을 나누는 가섭의 태도는 바른 행위가 아니라고 나무란다. 수행자는 빈부귀천을 보지 말아야 하며 똑같은 자비심을 지니고 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부자는 복이 많고 가난한자는 복이 없으므로 가난한 자에게 자비심을 더 일으키는 것은 올바른 행위가 아니다. 부처님은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자들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부처님은 가난하건 부자건, 건강하건 병들었건, 잘났건 못났건,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자비로 대하셨다. 그렇기에 걸식하는 데에도 차별심을 지니고 걸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걸식하는 수행자는 음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오직 화합상을 깨뜨리기 위해 음식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화합상이란 오온(五蘊)을 가리킨다. 오온은 색·수·상·행·식이 모여 한 덩어리의 모습을 띠고 있으므로 화합상이라 한다. 그런데 이 화합상인 오온은 생로병사를 비롯한 온갖 고통이 깃들여져 있다.

수행은 그와 같은 화합상을 깨뜨리는 데 있다. 오온을 깨뜨린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열반을 성취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때 오온을 깨뜨린다는 것은 오온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온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깨버린다는 의미이다. 만약 자신의 오온에 대하여 욕탐을 버리고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오온의 화합은 이미 화합이 아니며 오온으로부터의 해탈이다. 수행자가 밥을 먹고 신도들의 보시를 받는 것은 오로지 화합상인 오온에 대한 욕탐과 집착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수행자가 신도들의 정성으로 자신의 오온을 드러내고 견고히 하겠다는 생각을 지닌다면 그는 더 이상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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