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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행일기] 안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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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5  10: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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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연수향
불교를 알기 전엔 그런 줄만 알았다.

가정·생업에만 몰두하다
몸도 마음도 병들어 고통
불법승에 귀의한 뒤 안정
불교 안내자 역할에 최선


‘나’라는 존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 부모님이 만든 환경과 주어진 모든 것들을 배경 안에서 사는 줄 알았다. 자기 사고방식에 따라 잘 살고, 못 살고 그런 줄만 알았다. 천안 종갓집 1남5년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자 할머니와 성불사에 다니며 100일 기도를 하고 남동생을 가졌단다. 그렇다. 부모님들은 신심이 유독 깊었다. 유년시절 두어 번 절에 따라간 기억이 불교의 전부였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작은 가게를 시작했다. 열심히 살았다. 20년 넘게 오후 10시까지 가게에서 영업을 했다. 날 너무 혹사시켰던 걸까. 화근이 됐다. 우울증과 함께 건강마저 안 좋아졌다. 악순환이었다. 살아가야 할 의욕도 잃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년에 수술을 3번이나 했다. 힘든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생각은 어둠속으로 정말 빠르게 빠져들었다. 허무했다. 열심히 가정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내 모습은 병들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나를 위해서는 정작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무엇이든 의지하고 싶었다.

나 자신을 위해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가지려고 하니 어떤 종교를 선택해야 할지 막막했다. 몇 날 며칠 고민 끝에 결정했다. ‘절에 가야겠어.’

불교밖에 없었다. 도심 속 회색 건물이 아닌 산사의 도량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무작정 나섰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또 막막했다. 돌고 돌아 차가 멈춰 선 곳은 작은 사찰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다. 예불시간에 독송을 따라하려고 ‘천수경’을 뒤적이다보면 어느새 지나가버리기 일쑤였다. ‘혼자 불교를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구나.’ 예불조차 따라가지 못하니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을 모르니 더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난 법비의 감로수에 목이 말랐다. 대형서점을 찾아가 불자가 알아야 할 기본예절, 기도하는 방법부터 익혔다.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생애’를 비롯해 큰스님들께서 쓰신 책 여러 권을 사서 읽었다. 법당에서는 법회 순서를 메모하며 스스로 배워 나갔고 열심히 기도했다.

부처님께 정말 간절히 매달렸다. 며칠 동안 통제가 안 됐다. 그만큼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나왔다. 눈물이 그렇게 뜨겁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내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몸이 날아갈 듯 건강해졌다. 가게에도 손님이 많아졌고, 실타래 풀리듯 순조롭게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부처님 가피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받았다.

감사기도와 부처님께 받은 은덕을 이웃에게도 전하려했다. 불교교리를 잘 모른 채 내가 읽은 책을 기본으로 포교를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 승가에 귀의하고 믿으면 행복하고 복과 지혜를 다 주신다. 하지만 모른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때부터 내 가게는 사업장이면서 전법포교의 장이 됐다.

난 부처님 가피를 알았기에 고통 속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불법을 전해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겠노라 마음먹었다. 불교공부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해야 했다. 내가 다니던 절에는 불교대학이 없었다.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던 화성 신흥사불교대학에 2012년 3월 입학했다. 1년 과정을 수료했고, 경전연구반 2년 과정도 열심히 들었다. 사찰행사 안내 등 봉사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신행에 자비를 더했다.

내가 안내한 도반 모두 불교대학에 입학해 졸업을 했거나 수업을 받고 있다. 교통이 불편한 도반에게는 일일이 전화해서 한 분이라도 결석하는 사람이 없도록 모시고 다녔다. 이 도반들이 수승한 가르침을 믿고 따르게 되면 포교를 하게 되고 불자들이 더 많아지리라 믿는다. 내 기도도 바뀌었다. “해주세요”가 아닌 “이 세상 모든 분들이 행복해지시길”이라는 발원으로 달라졌다. 그렇게 삶이 바뀌니 화성 신흥사에서는 지역 법등장, 교화 부차장, 감사 등 다양한 소임을 주기도 했다.

불자가 된 게 참으로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열심히 수행정진해서 불법을 알려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고 싶다. 일반포교사 21기로 활동 중이다. 2년 뒤엔 전문포교사로서 수승한 부처님 가르침 전하며 살아가리라.

공동기획: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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