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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932년 박문사(博文寺) 개원

기자명 이병두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당

▲ 1932년 10월26일 열린 박문사 봉불식에는 많은 국내외 불교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현재 국내 최고급의 신라호텔이 있는 자리는 1932년부터 민족해방에 이르기까지 13년 동안 일제가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한 사당을 겸한 절을 세워 운영하던 곳이다.

이토 사망 23년 맞아 낙성식
이광수 등 친일 부역자 참석
식민지 지배 위한 활동 목적

본래 이곳은 1895년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주동한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인물 명성황후를 지키다가 피살된 시위연대장 홍계훈과 궁내부대신 이경직 등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충성심을 찬양한다’는 뜻으로 고종황제가 제단을 쌓고 ‘장충단(?忠壇)’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곳이다.

장충단이라는 이름에 이미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에 대한 감정이 담겨 있어 언제든 항일 운동의 상징적인 장소가 될 수 있었으므로, 1919년에 총독부에서 이곳을 공원으로 바꾸었다가, 1932년에는 공원 동쪽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한 사찰을 짓고 그의 이름을 따서 박문사(博文寺)로 하였던 것이다.

박문사는 이토가 속했던 일본 조동종(曹洞宗) 사찰로 그가 안중근 의사의 총탄을 맞아 죽은 지 23년이 되는 1932년 10월26일에 맞추어 낙성·봉불식을 가졌다. 조선총독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가 직접 참석하고 이광수·최린·윤덕영 등 고위급 친일 부역자들도 빠지지 않았다.

이 절은 정무총감 고다마 히데오(兒玉秀雄)가 발기하고 총독부가 앞장서 자금을 모아 설립하였으며, 발기 취지문에서 사찰 창건의 목적을 ‘조선 초대총감 이토 히로부미의 훈업을 영구히 후세에 전하고 일본불교 진흥 및 일본인과 조선인의 굳은 정신적 결합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분명하게 못 박고 있었다. 게다가 이 절을 지으면서 광화문에 쓰였던 석재(石材)와 경복궁 선원전과 부속 건물 등을 가져다 사용하였으며,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興化門)을 이전하여 정문으로 사용하여 ‘조선왕조의 흔적’을 없애는 데에 불교를 악용하기도 하였다. 지난 2004년 일본대사관이 자위대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박문사가 있었던 신라호텔에서 열었던 것도 이런 역사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박문사 정문 시절 흥화문은 ‘춘무(春畝; 이토의 호)를 경사스럽게 한다’는 의미에서 경춘문(慶春門)으로 이름까지 바뀌는 불운을 당하였고, 박문사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영빈관과 신라호텔이 들어서고 나서도 그 정문으로 쓰이다가 1994년에야 본래 자리인 경희궁 터로 옮겨졌다.

박문사는 창건 이후로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게(?) 활동하였다. 일제가 침략전쟁의 도구로 만들어낸 전쟁 영웅의 동상을 세워 정신무장의 중심으로 삼기도 하고,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 죽은 일본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무운장구(武運長久)를 기원하는 기도를 이어갔으며, 1939년에는 이토 히로부미와 이용구·송병준·이완용 등 최고위급 부일 협력자들을 위한 감사 위령제를 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박문사는 말이 절이지, 실제 하는 일은 일제의 조선 지배와 대외 전쟁을 정당화하는 총독부의 부속 기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박문사에 부처님을 모시는 봉불식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위 사진에는 삭발하고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아주 많이 보인다. 법당 밖에 행사용 천막을 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도 남아 있다.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서 단순하게 행사를 구경하러 온 일반 대중들이나 윤덕영 등 초청장을 받고 왔을 친일 부역자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살생을 가장 중요한 금기로 삼는 승려들이 침략 전쟁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 낙성법회에 참석해도 되는지…”, 이런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에 잠기게 되는 것이 나 혼자만일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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