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동부여행기

기자명 가섭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7.25 13:11
  • 수정 2017.07.25 16:18
  • 댓글 2

현지인들 지켜보며 여유 느껴
호시우보하면 삶 의미 찾을 것

얼마 전 지인들과 미국 동부를 여행했습니다. 14시간30분이란 긴 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밤낮이 뒤바뀐 시차는 장거리 여행의 필수죠. 은근히 찾아드는 알 수 없는 몽롱함이 시차에 의한 것임을 며칠을 보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1만3000km를 날아가 도착한 곳은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입니다. 한국에서 아침에 출발했는데 미국에서 똑같은 날 아침을 다시 시작하자니 시차를 실감하게 됩니다. 몽유병 환자처럼 어기적어기적 불편한 발걸음을 입국수속 심사대로 옮겼습니다. 입국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길게 늘어져 있는 줄 끝으로 가 서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들 중 짜증 섞인 얼굴로 앞을 응시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나와 함께 출발한 한국여행객들입니다. 누군가가 “빨리 좀 합시다”라고 큰소리 한번 내주길 바라는 눈빛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집니다. 14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와 몸은 피곤한데 하염없이 기다리다보니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국내선 이용객들과 뒤엉켜 입국수속장은 말 그대로 도떼기시장이 됐습니다. 입국장을 벗어나 현지가이드를 만나는데 걸린 시간은 2시간30분. 성격 급한 우리에겐 이미 한계점을 넘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분주하게 시작된 미국여행은 하루에 평균 600km를 달리는 장거리 버스여행이었습니다. 워싱턴과 뉴욕, 캐나다 토론토와 퀘벡 등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북아메리카 사람들의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현지인들을 지켜보며 느낀 점은 여유였습니다. 커피 한 잔을 사려고 해도 주문하는 사람이 충분히 고민하고 고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직원의 모습, 기다리던 다른 손님도 빨리 하라고 눈치 주는 법이 없습니다. 사기 전부터 무엇을 주문할지 고민해서 카운터에서는 재빠르게 주문하고 사라지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조급하지 않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현재를 즐기는 현지인들의 생활방식이 남다르게 느낀 이는 저 한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현지 식당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식당 주인은 함께 간 일행을 보더니 한국 사람들 때문에 “빨리빨리”가 세계 공통어가 되었다고 우스갯소리를 건넸습니다. 그러더니 주방을 향해 정확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빠리빠리”를 외쳤습니다. 식당 주인이 주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고 넘겼지만 마음 한편으로 불편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과 동일시되는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빠른 경제 성장부터 ‘로켓’ ‘총알’로 대변되는 빠른 배송, 초고속보다 10배나 빠른 기가인터넷 등입니다. 덕분에 우리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이면엔 문제가 자리합니다. 고도성장 뒤에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숨어 있고, 빠른 배송은 배송노동자의 사투가 있어 가능한 일이라는 거죠. 다른 누군가보다 빠르다는 뜻이니 치열한 경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틈에 인내심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로딩이 조금만 늦어지는 걸 참지 못해서 창을 닫거나, 구매한 물건이 바로 오지 않는다며 항의하는 일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합니다.

▲ 가섭 스님
느림의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조금 느리더라도 기다려줄 수 있는 삶을 살자는 권유인 셈이지요. “남보다 빨리”가 아닌 느리더라도 함께 가자는 말은 요즘 같은 시대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느림은 게으름이나 뒤처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면에 더 집중하고, 주변에도 관심을 돌리고, 경쟁과 성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호시우보(虎視牛步) 하다보면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유를 찾는 일에도 노력은 필요합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침잠하다보면 여유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입니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여름휴가를 만끽해야겠습니다.


가섭 스님 조계종 포교부장  kasup@hanmail.net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