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6. 허공이 무심한 것처럼,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기자명 정운 스님

법 구하는 이는 구하는 것 있으면 안돼

근기는 식물 뿌리에서 비롯
타고난 바탕 따라 능력 달라
알음알이만 내지 않는다면
본래 성불된 부처 그 자체

*원문
배휴 : “어떤 것이 도이며,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선사 : “도가 어떤 물건이기에 그대가 수행하려고 하는가?”
배휴 : “그렇다면 제방의 종사들이 서로 전하며 참선해 도를 닦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사 :  “그것은 둔근기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말한 것이다. 굳이 의지할 필요는 없다.”
배휴 : “둔근기를 이끌기 위해 말씀하신 거라면, 그러면 상근기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어떤 법을 설하십니까?”
선사 : “만약 상근기라면 어찌 다른 곳에서 찾으며, 자기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어찌 하물며 특별히 합당한 뜻이 있겠는가? 경에서 ‘법이라고 하지만, 그 법이 어떤 모양인가?’라는 내용을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배휴 : “만약 이러하다면 불법을 구하고 찾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선사 : “그러하다면, 수행하는 공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겠지.”       
배휴 : “그렇다면 모든 가르침이 뒤섞이고, 단절되어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선사 : “누가 그것을 없다고 했으며,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대는 찾으려고 하는가?”
배휴 : “선사께서 이미 그것을 찾으라고도 하지 않으셨거늘 무슨 뜻으로 그것을 단절시키지도 말라고 하십니까?”
선사 : “만약 찾을 것이 없다면, 곧 쉼이다. 그러니 누가 그대에게 그것을 단절하라고 가르치는가? 그대는 허공을 보라. 어떻게 허공을 끊을 수 있겠는가?”
배휴 : “이 법이 저 허공과 같은 것입니까?”
선사 : “저 허공이 그대에게 도와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한 적이 있는가? 내가 잠깐 이렇게 말하니, 그대가 알음알이를 내고 있군.”
배휴 : “응당히 다른 사람에게 알음알이를 내지 않도록 해야 합니까?”  
선사 : “나는 그대를 막지 않았다. 또한 알음알이는 의식에 속하는 것으로, 의식이 생겨나면 지혜가 막히는 법이다.”
배휴 : “그렇다면 의식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까?”
선사 : “만약 의식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누가 옳다고 말하겠는가?”  

해설
근기는 식물의 자양분적 요소에서 유래되었다. 곧 모든 식물의 뿌리는 가지ㆍ줄기ㆍ꽃ㆍ잎 등을 생성시켜 그 식물을 자라게 하듯이 사람도 능력에 따라 공부 향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수행자를 상근기ㆍ중근기ㆍ하근기(둔근기)로 나누고, 특히 간화선 수행자를 ‘상근기 수행자’라고 하였다. 당연히 교학하는 승려를 중근기, 사판승을 하근기로 보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스님들의 근기를 나누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포교에 매진하는 스님[하근기라고 했던 사판]을 존경스럽게 여겨 상근기라고 할 정도이다.

언어로 교학을 설명하는 것은 둔근기이며 상근기에게는 어떤 부연설명이나 말과 언어가 필요치 않다. 이 점은 앞에서 언급한 본각ㆍ본래 성불되어 있는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오직 평상의 일상생활 그대로가 부처의 행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조(馬祖·709∼788)도 “무릇 법을 구하는 이는 구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마음밖에 부처가 따로 있지 않으며 부처를 떠나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알음알이도 다양하게 해석된다. 정식(情識)ㆍ뜻ㆍ의식 등 생각으로 분별해 아는 것을 말한다. 대승불교의 깨달음은 직관인데, 불각(不覺)의 상태에서 생각을 통해서 의미로 이해하는 것 자체가 알음알이이다. 유식에서는 7식을 망상을 일으키는 분별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사들은 책을 보지 말라 누누이 강조했는데, 바로 실참을 통해 깨달아야지, 알음알이를 일으키지 말라는 뜻이다.  

사찰 입구에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 문구가 많이 있다. 이 문안에 들어와서는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는 뜻이다. 꼭 수행자만이 아닌 불자이든 비불자이든 간에 사찰 문안에 들어와서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이든 육안으로 보았던 것이든, 귀로 들은 그 어떤 것도 모두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