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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박상훈

기자명 김영욱

푸른 염원 가득한 도량(道場)으로 이끌다

▲ ‘설법을 듣는 승려’, 벽체에 채색, 25×36cm, 2016.

파리하게 머리 깎은 스님 한 분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설법을 하고 있는 대상에 머무른다. 보이지 않는 대상, 그는 석가모니이다. 이 작품은 부처님의 일생을 담은 불전도(佛傳圖) 중 중생에게 설법하는 장면으로 짐작된다.

키질 석굴 푸른빛에 매료
고증 통해 현상까지 담아

이 작품은 쿠차의 키질 석굴 제219호굴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의 한 장면을 옮겨 그린 작품이다. 쿠차는 중국 돈황을 벗어나 비단길이 펼쳐진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에 위치한 고대 불교 왕국 구자(亀茲)를 말한다. 쿠차에 조성된 키질 석굴사원은 서기 3~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중국의 다른 석굴사원보다 조성연대가 앞선다. 무엇보다도 실크로드에 위치한 베제클리크나 쿰트라 석굴사원과 더불어 현재까지 보존이 잘 되어있는 대표적인 석굴사원이다.

작가는 몇 해 전 돈황 막고굴을 지나 천산산맥의 길을 따라 누란, 쿠차, 사마르칸트를 돌아 파미르고원을 바라보며 돌아온 여정을 나에게 들려줬다. 이야기하며 보여준 작은 노트에는 그가 여정 중에 보고 들은 것을 담은 글과 그림이 빼곡했다. 그중 절반 이상이 돈황 막고굴과 키질 석굴사원의 벽화 일부를 그린 스케치였다. 벽화의 현상을 파악하고 벽체를 만들어 벽화를 그리는 작가의 꼼꼼한 성격이 고스란히 노트에 담겨 있었다.

그의 작업실은 중국 감숙성(甘肅省) 북부에 위치한다. 사진으로 보여준 작업실에는 여러 가지 흙과 타거나 타지 않은 짚, 그리고 목재와 안료로 가득했다. 조그만 책상이 놓인 방 한켠에는 중국 석굴사원에 관한 보고서와 도록 등의 서적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론을 공부하는 공간과 직접 벽체를 제작하고 벽화를 모사하는 공간을 분리해두었다.

작업은 거친 흙을 골라내는 것부터 시작된다. 거친 흙은 벽체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짚풀과 마짚을 넣고 섞은 소토를 거친 흙 위로 바른다. 작가는 3~9세기경 조성된 석굴사원의 벽체 분석 결과에 의거해 소토를 만들었다. 소토를 만드는데 2~3일 정도를 소비한다. 그 시간 동안 작가는 벽화의 안료가 분석된 보고서와 도록을 통해 가장 근접한 안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완성된 소토로 벽체를 만들 때 현재 벽화의 벽면에 보이는 균열과 파인 흔적 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작업이 가장 오래 걸린다. 그리고 안료로 채색해서 현상을 모사한다.

듣다보니 꽤 흥미롭고 매력적인 작업이다. 박상훈의 작품이 더욱 시선을 끄는 이유는 푸른빛을 발하는 라피스라즐리(lapis lazuli)의 색감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위구르어로 ‘붉은빛’이라 칭해지는 키질은 석굴 외부 암산의 황토색으로 인해 붉게 보인다. 반면, 석굴 내부는 라피스라즐리로 칠해진 푸른 벽화가 시선을 압도한다. 그는 중국의 다른 석굴사원 벽화의 현상모사를 작업하던 중 키질 석굴의 푸른빛에 매료되어 노선을 변경했다. 그의 작업실 안에는 키질 석굴 벽화를 현상 모사한 푸른빛의 작은 벽화들이 이곳저곳 놓여 있다.

박상훈의 작업은 현상을 모사한다는 점에서 또래의 작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에는 성취감과 행복함, 그리고 무언의 깨달음이 서려있었다. 그와 나눈 대화의 한 꼭지를 여기에 기록하며 글을 마친다.

“이 작업들을 진행하면 제가 마치 키질 석굴의 큰 도량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푸른빛의 도량이죠. 쿠차의 사람들은 푸른빛을 사랑합니다. 그들이 머무는 집, 생활하는 장소, 모이는 공터 등 쿠차의 건물과 담벼락, 그리고 문과 창문에는 푸른색이 가득하죠. 그들은 푸른색을 통해 자신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이 작업을 해나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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