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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수보리와 평등법-상

기자명 이제열

음식 분별 여읜 수보리가 질책 받은 이유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유마힐의 병문안을 가거라.’ 그러자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의 병문안을 갈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제가 언젠가 그의 집에서 걸식을 하였는데 그가 제 발우에 먹을 것을 가득 담아주고는 수보리님, 만일 먹는데 평등한 사람은 법에도 평등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음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탐진치를 끊은 것도 끊지 않은 것도 아니며, 이 몸 그대로 두고 실상을 알아야 하며, 어리석음과 애착을 끊지 않고도 삼명(三明)과 팔해탈(八解脫)에 들며, 오역죄를 짓고도 해탈을 얻되 그러면서도 해탈을 얻은 것도 속박된 것도 아니며, 사제(四諦)의 이치를 본 바도 보지 못한 바도 없으며, 도과를 얻은 것도 얻지 못한 것도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 음식 집착
아나함 이상 올라가야 탐착 끊겨
‘아라한 수보리’ 법 차별은 존속
유마거사, 대승불교 입장서 비판

음식을 먹는 일은 살아 있는 것들의 본능이다. 아무리 수행자라해도 먹지 않으면 도업을 이루지 못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도 먹는 일에 엄청나게 집착한다. 맛있는 음식, 맛없는 음식, 이로운 음식, 해로운 음식을 늘 헤아리면서 음식을 먹는다. 대부분의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생존 이외에도 맛을 즐기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 어쩌면 인간의 첫 번째 탐욕은 음식에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음식을 마음으로나 먹는 행위로도 차별을 버리고 평등하게 하는 길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구가 되어 탁발하는 것이다. 비구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재가신자들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하지만 비구가 되어 이런 식의 탁발을 해서 음식을 먹는다 해도 마음이 평등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음식에 대한 차별심이 수행을 한다고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지가 되기 위해서는 아나함이나 아라한의 과위에 올라서야한다. 수행자가 아나함이나 아라한과를 얻게 되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끊어진다. 그러면 마음에 동요가 일지 않는다. 아마도 가섭존자나 수보리 존자는 비록 유마거사의 질책을 받고 있지만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라 음식에 대한 집착은 완전히 끊어졌을 것이다.

‘장로게경’에 보면 가섭존자가 문둥병 환자로부터 음식을 받는 광경이 나온다. 문둥병 환자가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데 곪아 떨어진 그의 손가락이 가섭존자의 밥그릇 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가섭존자는 어떠한 동요도 없이 그대로 음식을 먹었다. 범부들로써는 몸서리칠만한 무서운 정신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추측컨대 이와 같은 정신력은 수보리존자도 흡사했을 것이다. 수보리존자 또한 아라한인지라 가섭존자 못지않게 음식에 대한 탐착을 떠나 평등한 마음으로 걸식을 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마거사는 이런 가섭존자나 수보리 존자를 비판하는 것일까? 이는 두 사람이 음식에 대한 평등은 이루었을지 모르나 법에 대한 평등심은 지니지 못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을 지칭한다.

유위법은 번뇌에 의해 생멸변화하는 중생계의 법이요, 무위법은 깨달음에 의해 생멸변화를 떠난 성현계의 법이다. 그런데 가섭존자와 수보리존자 같은 아라한들은 이 두 가지 법을 완전 상반된 가치로 보고 있다. 즉 탐진치와 깨달음의 실상 경계를 반대로 여기고 있으며, 이 몸을 벗어나 해탈열반이 성취된다고 알고 있다. 무명(無明)과 삼명(三明)은 서로 대립관계이며, 애착과 팔해탈은 서로 상반된 관계이다. 어둠과 밝음이 어찌 같을 수 있으며, 속박과 해탈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유마거사는 이와 같은 가섭과 수보리존자의 깨달음과 견해에 일침을 가한다. 대승의 입장에서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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