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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신데렐라 ①옛날 얘기에는 왜 악독한 계모가 자주 등장할까
김권태  |  munsach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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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31  13: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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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계모와/ 어린 동생/ 구박을 받았더래요…”

만2~3세부터 요구되는 사회적 제약
어려운 문제 이성으로 해결 시작해
사회적으로 허용가능하게 욕망 승화
상대 욕망 존중해 갈등 해결하기도


어릴 적 쎄쎄쎄 놀이를 하면서 양 손등과 손바닥을 엇갈려 치며 동무와 함께 불렀던 노래이다. 그러면서 늘 궁금했던 것은 왜 옛날이야기에는 그렇게도 악독한 계모가 많이 나오는가 하는 것이었다. 먼저 신데렐라 이야기의 줄거리를 보자. 

옛날 옛날에 어느 부부가 착하고 아름다운 딸 하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행복한 시간도 잠시, 엄마는 딸을 낳은 지 이삼 년이 지나 일찍 죽었다. 아빠는 어린 딸을 키우기 위해 재혼을 해야 했고, 계모는 자기의 두 딸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는데, 이들 모녀는 늘 어린 신데렐라를 구박했다. 어느 날 아빠가 여행을 다녀와 신데렐라가 사달라고 조르던 나무라고 하며 자기의 모자에 붙은 나뭇가지를 선물로 주었다. 신데렐라는 그 나뭇가지를 죽은 엄마의 무덤 앞에 심고 정성껏 가꾸었다. 나무는 쑥쑥 자라났고 어디선가 흰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 신데렐라는 힘이 들 때마다 엄마의 무덤에 찾아와 나무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며 고달픈 시간들을 견뎌냈다. 어느 해 왕이 며느리를 얻기 위해 전국의 처녀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는데, 계모는 콩을 부엌 아궁이의 잿더미에 쏟아 붓고는 신데렐라에게 그것을 다 골라낼 때까지 참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데렐라는 서러운 마음에 나무에게 가서 하소연을 했고, 그것을 들은 흰 새들이 날아와 콩을 다 골라 주었다. 또 나무는 호박을 마차로, 쥐를 마부로, 헌 신발을 유리구두로 만들어 주면서, 이 마법은 자정이 되면 풀리니 그 전까지는 꼭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신데렐라는 왕자의 눈에 띄어 왕자와 오래 춤을 추었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서둘러 뛰어나오다 그만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왕자는 신발의 주인공을 찾아 전국을 뒤졌고, 결국 신발의 주인인 부엌데기 신데렐라를 찾아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이 둘은 왕과 왕비가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리며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사랑스런 엄마와의 행복한 시간은 이삼 년이었고, 그 후에는 계모와 의붓언니들이 들어와 구박이 시작된다. 이것은 만2, 3세가 되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아이에게 사회적 제약과 금기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주던 진짜 나의 엄마는 죽어서 세상에 사라졌고, 이제는 이것저것 안 된다고 혼내기만 하는 계모 같은 엄마와 내가 독차지했던 부모의 사랑을 나눠 가져야하는 의붓언니 같은 경쟁자들 속에서 세상의 고달픔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상실감을 견뎌내기 위해 신데렐라는 죽은 엄마를 대신하는 ‘나무’를 키우며 함께 쑥쑥 성장해간다. 나무에 깃든 ‘흰 새’들은 성장의 대가로 얻어지는 분별력과 이성의 힘을 뜻한다. ‘흰 새들이 콩을 골라낸다’는 것은 떼를 쓰며 감정적으로만 대응했던 유아기에서 벗어나 현실의 어려운 문제들을 이성의 힘으로 풀어간다는 뜻이다. ‘마차와 마부, 유리구두로 변한 호박과 쥐와 헌 신발’은 욕망을 날 것 그대로 토로하고 충족되기를 바라는 것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수용될 만한 새 욕망으로 승화시킨 것을 뜻한다. 대개 욕망의 승화는 예술작품으로 표현되므로, 낡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마법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신한 것이다. 또 ‘자정을 넘기지 말라’는 것은 욕망의 절제를 뜻하고, ‘잃어버린 신발의 주인을 찾는 것’은 나의 반쪽인 잃어버린 이성의 짝을 찾는 일이며, ‘신발이 발에 잘 맞는다’는 것은 서로 육체적인 궁합이 잘 맞는다는 뜻이다. ‘왕과 왕비가 되어 나라를 잘 다스렸다’는 것은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어 왕처럼 자유로워졌다는 뜻이며, 나라를 다스리듯 상대의 욕망을 존중하며 갈등을 잘 해결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들은 마치 헌 집을 뜯어다가 새 집을 짓는 일이며, 밤길에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던 뱀이 실은 밧줄임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안심(安心)하는 일이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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