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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휴가의 역설

기자명 최원형

자연 잠식하면서 그리워하는 모순된 현대인 삶

새벽에 재난 문자를 받은 게 올 여름 들어서만 서너 번은 족히 된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챙겨준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에선 이제 재난이 일상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솔직히 있다. 폭염, 폭우를 알리는 문자 알림소리에 새벽잠을 설치는 일이 잦아지면서 드는 생각이다. 여름이 더운 건 당연한 기후현상이나 도시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은 좀 다르다. 전철이나 버스 안의 냉방은 추위를 잘 타는 내게는 과하다. 오한을 느낄 정도로 오들오들 떨다 차에서 내리고 나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더위조차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냉방이 잘 되기는 건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냉방으로 시원해진 자동차나 건물의 대가로 바깥은 더 뜨거워진다. 건물과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유쾌하지 않은 뜨거움이 도시에는 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점심 식사를 하러 건물 밖엘 나섰다가 열기에 숨이 막히던 경험은 아찔했다. 2003년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7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에어컨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 저 숫자 안에 얼마나 포함이 됐을까?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발표했고 1973년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펴냈다. 그로부터 45년의 시간이 흘렀다. 돌아보면 45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지구의 생태계가 파괴되었고 지구의 환경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악화의 길을 걷고 있다.

편리한 인프라 집중된 도시의 삶
정서적 휴식처 자연 그리워하나
발전 논리로 끊임없이 환경파괴
생태계 망가지면 인간 입지 축소

휴가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가 동안 도시를 등지고 싶어 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나 사람들이 대체로 떠나 머물고 싶어 하는 곳은 한적한 자연이다. 그곳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도시인들이 산사를 찾는 이유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인구 비율이 91%를 넘어서고 있다는 통계치와 휴가 때 도시를 등지고 싶어 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시는 편리한 인프라가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살고자 하는 곳이지만 정서적으로 편안한 곳은 아니다. 늘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처럼 오래전 인류의 무대였던 자연을 그리워한다. 최신 기술로 만든 컴퓨터의 배경화면은 가장 멋진 자연을 담고 있다. 최첨단 자동차의 광고장면을 봐도 주행하는 곳은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자연이다. 그럼에도 자연을 좀체 내버려두질 않고 ‘발전’과 ‘성장’의 논리로 끊임없이 잠식해 들어가는 것도 또한 우리들이다. 그리워하고 좋아하면 잘 보전해야 하지 않을까? 45년 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예견한 것은 자연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의 유한성, 나아가 모든 존재의 유한성을 생각할 때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럼에도 발전이나 성장 그 어디에도 유한에 대한 자각은 보이질 않는다. 얼마 전 모래가 멸종위기 자원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은 무척 충격이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주재료가 모래다. 땅을 다지고 건물을 올릴 때도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 때도 전 공정에 모래가 들어간다. 어디 그뿐일까? 유리창을 만드는데도 스마트폰 액정도 최근 재생에너지로 각광을 받는 태양광 패널을 만드는데도 모래가 들어간다. 현대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은 모래 없인 불가하지만 그래봤자 모래성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말은 대단히 역설적으로 들린다. 모래는 인류가 자연물 가운데 물 다음으로 많이 끌어다쓰는 물질이다. 모래는 순환하지만 그 순환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인간이 가져와 쓰면서 멸종 위기에 처해진 자원이 돼버렸다. 사실 모래의 순환은 대략 수억 년에 걸친 활동이다 보니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모래는 지속불가능한 자원인 셈이다. 육지의 모래가 부족해지자 바닷모래가 도심의 빌딩이 되었다. 지구 곳곳에 널려있고 현재도 진행 중인 사막의 모래는 오랜 세월 동그랗게 마모되어 건축자재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 육상모래가 소진되자 사람들은 바다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바닷모래를 채취하면서 바다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물고기며 바다 생물들의 터전이 돼야할 모래를 퍼 올려 도심의 빌딩을 만들고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빽빽한 빌딩숲도, 사방이 막힌 데다 고작 작은 창문 몇 개로 바깥과 소통하는 빌딩내부도 바람 길의 소통을 막는 구조다. 다 막아놓고 여름이면 건물마다 갇힌 열기를 바깥으로 내다 버리느라 바쁘다. 하지만 생태계가 망가질수록 우리의 입지 역시 좁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뭘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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