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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빈승의 발심원력-하

“70년을 하루같이 중생업장 짊어지길 발원해 왔습니다”

▲ 대만 불광산의 인재 육성기관인 불광대학. 대만 불광산 제공

"발심원력이라 함은 입으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60년 전 빈승이 대만 타오웬(桃園) 중리(中壢) 원광사에서 방부를 들이고 있을 때 사중의 80여명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매일 우물물 200~300통을 길어 왔습니다."

저의 발심원력은 이렇게 천천히 세월을 따라 늘어났습니다. 오지에 사는 주민들이 병원진찰을 받는데 어려움이 있기에 저는 전력을 기울여 이동의료팀을 파견하였습니다. 교통이 불편한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지어주었고 이동도서관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절에 찾아와서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들의 교통이 불편할까 염려되어 제자들에게 봉사자들이 왕래할 수 있게 교통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당부했습니다. 현재 불광산 본산의 대형버스와 중형버스들의 셔틀운행이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불광산을 찾아오는 불자들이 비탈길을 걷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노약자들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저는 전동차를 마련하여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판소리가 들리면 저는 오늘 대중들이 밥과 반찬을 즐겁게 먹었을까, 만족했을까에 대해 생각합니다. 종소리와 북소리를 들으면 저는 대중들도 들었을까, 모두들 느끼는 것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하늘에 먹구름이 보이면 사람들이 비가 오려는 것을 알려나 하고 생각하였고 여름철이 지나고 가을에 들어서면 태풍이 불어 재해가 생기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였습니다. 저는 하늘의 태양이 너무 뜨겁지 않기를 기원하였고 달빛이 너무 미약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늘에 가득 빛나는 별들과 신선한 공기는 대만뿐만 아니라 세계 지구촌에 사는 누구에게나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신심을 잃고 불광산을 떠나는 청년들에게 생존에 어려움은 없는지도 걱정합니다. 또한 국내외 모든 신도들이 의식생활을 풍족하게 하고 있는지도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광산의 제자들 누구나 모두 복덕을 닦고 길러 몸과 마음을 안주할 수 있게 하라고 이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신도를 보살피고 신도에게 관심을 주면서 재물이 신도에게 쌓이게 하고 적절한 때에 적절한 보시를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가르침을 알아야 합니다. 일반 세속인들은 청춘 남녀에게 “세상의 연인들이 결국에는 가정을 이루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하지만 불법(佛法)을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가 항상 넉넉하고 즐겁고 평안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불광인들은 서로 만났을 때나 인사를 할 때 서로에게 “길상(吉祥)!”이라고 인사말을 합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한 인사말이 시간이 오래되면 공감대가 형성되니 서로 존중하면서 “길상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발심하고 원력을 세우는 것은 자기 스스로 배우고 정진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직업을 갖게 되고 순조로운 인생을 지낼 수 있도록 “남의 인정을 받도록 하라”고 모두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들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고 책임지면서 남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귀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면서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안 되며 ‘즐기는 것’이 ‘갖는 것’보다 더 수월하고 걸림이 없습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시선을 갖는다면 당신이 보는 세상이 모두 불국정토이고 부처님의 귀를 갖는다면 당신이 듣는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가 모두 불보살님이 우리들에게 설해 주시는 설법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당신이 부처님의 입을 갖는다면 당신이 하는 말은 자연히 사람들에게 환희심을 주고 당신이 부처님의 손을 갖는다면 자연스럽게 인간세상을 위해 많은 좋은 일과 선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심원력이라 함은 입으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60년 전 빈승이 대만 타오웬(桃園) 중리(中?) 원광사(圓光寺)에서 방부를 들이고 있을 때 사중의 80여명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매일 우물물 200~300통을 길어 왔습니다. 40리길 멀리 떨어진 시내까지 수시로 리어카를 끌고 가서 사중에서 필요로 하는 식품과 일상용품을 사오기도 했는데 이 일은 제 소임도 아니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으며 제가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저는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어서 기쁘게 발심하였을 뿐입니다.

개산초기인 1969년 불광산에서 행사를 개최할 만한 조건을 아직 갖추지 못했지만 불교로 사회 대중을 이롭게 해야 하고 낙오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저는 구국단(救國團 : 1952년 설립한 중국청년구국단으로 대만 국방부 소속 청년조직. 역자 주)과 협력하여 ‘대학청년 불교여름캠프’를 거행했습니다. 청년들을 폭넓게 교화하여 불교에 새로운 흐름을 열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마음대로만 되지는 않는 것으로, 제가 이렇게 발심원력을 세우고 내일이면 청년들이 도착하는 캠프의 첫날인데 그날 저녁에 물을 뽑아 올리는 펌프가 망가져버렸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내일 낮에 100여명의 청년 불자들이 도착할 텐데 밥을 어떻게 하지, 어떻게 씻고 양치하지, 불교가 이렇게 우습게 보여도 되나, 불교가 이렇게 능력이 없을 수 있는가 걱정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해서 어찌 사회와 경쟁할 자격이 있을 것이며 대중을 위해 이바지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오슝으로 가서 펌프수리 기술자를 모셔왔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5~6시간이 지나도록 수리를 하고 한밤중 1~2시가 되었지만 기계는 아직 정상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지쳐가던 기술자가 “공구가 부족해서 가오슝에 가서 가져 올게요”라고 하는 말에 이 사람이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으로 “제가 모시고 같이 갈게요”라고 하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라고 답했고 저는 다시 “한밤 중인데 그래도 같이 다녀오는 게 좋겠어요”라고 하였더니 상대방도 어쩔 수 없는 것을 알아 수리를 계속하였습니다.

긴급했던 그 시각, 저는 “제 혈관 속의 혈액이 깨끗한 물로 바뀌어 흘러나와 대중들이 먹고 마실 수 있게 되기를 서원합니다”라고 발원하였습니다. 불보살님의 가피인지 정성어린 기도에 감응하셨는지 새벽 4시경이 되었을 때 모터수리가 끝났고 저는 콸콸 흘러나오는 물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안심할 수 없어서 이른 새벽 좁은 길을 헤치고 산 아래쪽 한편에 위치한 저수탑으로 기어 올라갔는데 잡초와 가시가 온몸을 감싸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저수탑 꼭대기에 올라서서 손을 집어넣어서 “아! 이것이 물이구나. 이게 물이야, 정말 물이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저수탑에서 내려올 때 서쪽에 위치한 불학원에서 마침 4시 반 기상을 알리는 목판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청년 불자들아! 불교가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을 위해서 불교도 진정으로 이바지할 수 있단다”하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제 마음속에 가득한 환희심은 참선의 깨달음보다 더욱 만족스러웠습니다.

빈승의 저서 ‘왕사백어(往事百語)’ 가운데 한 단락인 ‘원력의 승화’는 저 자신의 출가 70년간 발심원력의 마음여정을 적은 글입니다. 12세가 되던 그 해 아주 자연스러운 인연으로 출가하여 대중을 따라 아침저녁으로 예불하고 기도하였습니다. 20세 이전 저도 일반인들처럼 법당에서 “자비하고 위대하신 부처님! 부처님의 가피로 저에게 지혜와 총명함과 용기와 힘을 주시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서른 살이 지난 어느 날 절을 하다가 문득 “내가 매일 불보살님에게 이걸 바라고 저걸 바라는 것은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인데 이러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의 기도내용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부처님! 저의 부모님과 스승과 어르신들, 친지와 도반들과 모든 호법 신도들이 신체건강하고 사업이 순조롭고 가정이 평안하도록 가호하여 주십시오.”

미소를 띠고 내려다보시는 부처님은 마치 더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남을 축원하는 저의 발전을 기특해 하시는 것 같아 저 역시 마음이 편하고 당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어느 날 매일 이렇게 기도를 하는 것도 이기적인 욕심이지 않은가 하고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저는 “불보살님께 가호해 달라”고 바라는 대상으로 삼았으며 하나같이 ‘저의 부모’, ‘저의 스승’과 어르신들, ‘저의 친지도반들’ 등등 으로 여전히 아집을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저의 기도는 다시 새로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부처님! 세계가 평화롭게 해주시고 민중이 안락하게 해주시고, 사회가 화합하게 해주시고 중생이 제도 받을 인연을 주십시오.”

매번 이 기원문을 읽으면 ‘화엄경’에 “오직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지 자신을 위해 안락을 추구하지 않는다(但願?生得離苦 不?自己求安樂)”는 가르침의 실천처럼 더는 자신을 위하거나 나의 아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니 자신의 수행이 더 발전했다고 느껴서 저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예순이 지나고서 문득 불보살님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찌해 항상 불보살님에게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기만 했을까요? 불보살님을 바쁘고 힘들게 하면서 평생 불제자인 저 자신은 도대체 무었을 하고 있었나요? 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반성하였고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보살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부처님! 제가 세상 중생의 업장과 고난을 짊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세상인심의 냉혹함과 따스함을 감당하겠습니다. 제가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계속해서 실천해 나아가겠습니다.”

이렇게 발심원력 한가지만으로도 저는 60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면서 차츰 이러한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저는 감옥 포교를 하면서 사람들이 지난 잘못을 고쳐서 새로운 삶을 살면서 자유를 얻기를 바랐고 학교에 강연을 가서는 학생들이 학업을 성취하고 지혜를 키워나가기를 바랐습니다. 산업체 강연에서는 사회경제의 발전으로 누구나 부유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랐으며 병원과의 인연에서는 모든 이들이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기를 축원하였습니다. 농촌 탈곡장에서 법문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모두들 해마다 풍년으로 웃는 얼굴이기를 바랐으며 도교사당 앞 광장에서의 포교에서는 모든 신명의 가피로 모두가 평안 무탈하기를 바랐습니다.

사람이라 한다면 삶은 발심하고 원력을 세워야 하고 실제로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여기에서 잃는 것은 없고 인간 세상에 빛과 따스함을 더하게 될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소설에서처럼 바람과 비를 부르는 신비롭고 기괴한 힘일 것까지는 없어도 우리들 자신이 빛과 열을 뿜으면 이 역시 마찬가지로 빛과 에너지가 있지 않을까요?

이제 저는 아흔이고 장애가 있는 노인이 되었는데 빈승에게 “성운 대사님!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으신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저에게는 본래 무슨 소원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소원이라는 것은 필요로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출가했고 제가 어떻게 해야겠고 무엇이 필요하다면 저는 발심하고 원력을 세웁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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