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8. 초열지옥

기자명 김성순

인과 도리 무시하고 믿지 않으면
치즈처럼 녹는 불지옥에 떨어져

이번 호에서는 대규환지옥을 마감하고 지옥 중에서도 뜨거운 초열(焦熱)지옥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겠다. 때마침 말복을 앞둔 염천의 계절이라, 아주 시의적절할 듯싶다.

사견이라는 죄업을 축적하면
죽기 전 이미 나쁜 형상 보여
거꾸로 알린 악업으로 인해
지옥이 안락하게 보여 집착

‘왕생요집’에서는 이 초열지옥이 대규환지옥의 아래에 있으며, 가로세로가 대규환지옥과 같다고 했다. 인간의 1600년은 타화천의 하루이며, 그 타화천의 수명은 1만6000년이다. 이 1만6000년이 바로 초열지옥의 하루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떠한 업인으로 인해 이 초열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일까? 이전까지 얘기했던 각종 근본지옥과 별처지옥으로 떨어지는 업인인 도둑질, 간음, 음주, 망어에 더하여 삿된 소견, 즉 사견을 갖는 것이 이 초열지옥의 업인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그 사견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먼저 인간으로 하여금 근본 초열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 사견은 “선악에 대한 과보가 없다”는 것이다. 업에 대한 과보, 인과의 진리는 불교신앙의 중요한 축이자, 인간의 선한 본성을 키우고, 자연과의 생태적 조화를 이루며, 사회적 질서를 지키는데 도움을 주는 도덕률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이 믿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인과와 과보를 부정하는 견해를 알리고 강변함으로써 자신의 죄업을 축적하게 되는 것이다. 지옥 교설의 근간이 되는 과보의 이치를 믿지 않는 이들은 죽음에 이르러 중음(中陰)에 도달하기도 전에 벌써 나쁜 형상들을 보게 된다고 한다.

아직 죽지 않고 병들어 있는 상태에서 산처럼 큰 사자, 곰, 뱀 등이 그를 향해 달려들어서 위협하는 환각에 시달리는 것이 그 처음의 징조이다. 그는 또한 짐승의 울음소리를 자주 듣게 되며, 얼굴이 기묘하게 비틀린 형상의 사람이 검은 불길을 뒤집어 쓴 채 나타나는 모습도 보게 된다.

과보를 믿지 않고, 남들에게도 그런 것은 없다고 주장하던 이들에게 이윽고 죽음의 그림자가 닥치면 모든 감각기관과 신체기관이 열리면서 대소변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환상을 보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 임종 환자를 간호하는 이들이 “어떤 병자는 허공을 어루만지고, 어떤 병자는 혹 자기 몸이 떨어지려는 것을 보고 손으로 온 몸을 어루만진다”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환각증세 뿐만 아니라, 그가 지은 악업으로 인해 감관기능까지 왜곡되어 냄새, 맛, 소리, 감촉, 보이는 것까지 모두 불쾌하고 두려운 것들이 나타나 번뇌에 시달리게 만든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도 지옥의 형상을 보게 되며, 날카로운 칼 같은 지옥풍이 불어와서 병자의 마지막 호흡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또한 병자가 이제껏 진리를 무시하고 거꾸로 알린 악업으로 인해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게 되기 때문에, 지옥의 처참한 형상도 아주 안락하고 장엄이 뛰어난 것으로 보게 되면서 대단히 집착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왜곡된 견해로 인해 죽음 이후에 곧바로 지옥으로 내달리게 되어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초열지옥에서는 악업의 과보로 모두가 평등하게 한 가지의 불을 지니게 되는데, 그것이 아무리 깨알만한 것이라도 염부제 전부를 다 태울 수도 있을 만큼 화력을 지니고 있다. 초열지옥의 죄인들은 이 조그만 불씨로 인해 끝도 없는 시간 동안 불에 타면서 치즈처럼 녹았다가 살아나기를 반복하면서 밤낮의 구분이 없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죄업이 다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열기만 있고 빛이 없는 지옥의 불에 시달리며 끝없는 어둠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전생의 업이 무지의 어둠으로 인한 것임을 의미한다.

인과와 과보의 이치는 불교의 교리 이전에 인간이 스스로의 악행을 제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식장치이기도 하다. 결국 과보를 믿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에 눈을 감아버리고, 현세에서 무감각하게 악업을 축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지옥 교설에서는 이러한 사견에 엄중 경고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