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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산불영, 만어산에 드리워진 부처님의 그림자

기자명 주수완

가락국 불국토 조성 위한 수로왕의 깊은 염원 담겨

▲ 밀양 만어산의 만어사 정경. 바위들이 마치 저수지에 가득찬 물고기떼가 뛰어오르는 것 같은 절경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삼국유사’ 3권 제4 ‘탑상’편은 말 그대로 탑이나 불상과 같은 인위적인 조형물에 대한 기록이지만 드물게 ‘어산불영’ ‘대산 오만진신’ 기사는 자연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탑상’에 실린 기사가 대부분 신라, 그리고 고구려, 백제에 관한 것이지만, ‘파사석탑’과 더불어 ‘어산불영’은 가야에 얽힌 이야기이다.

‘파사석탑’ 이야기와 더불어
드물게 보는 가야불교 기록

국경 초월 용과 나찰녀 사랑
수로왕, 부처님 모셔와 막아

귀의한 용 물고기와 법회참석
수많은 물고기 모양 바위 남아

나쁜 짓하다 부처님께 교화된
아프가니스탄 악룡 전설 비슷

함께 머물러 달라 악룡 부탁
부처님, 굴에 그림자를 남겨

만어사 미륵전 큰 바위에도
부처님의 그림자 서려있어

어산(魚山), 즉 ‘물고기 산’이란 현재 밀양 삼랑진읍의 만어산을 말하는 것인데, 이곳의 만어사에는 절경이 펼쳐져 있다. 크고 작은 엄청난 양의 바위덩어리들이 산 위에서 만어사 아래로 마치 강물이 흐르는 듯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보여서 ‘돌강’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마치 물고기떼가 강물에서 튀어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어산의 전설은 가야의 수로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공식적으로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이지만, 설화적으로는 가야의 수로왕(재위 A.D. 42~199)이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하면서 이미 불교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다. 근래에는 아유타국의 허황옥을 완전한 허구의 인물로 보기도 하는데, 이를 긍정할만한 결정적 근거도 없지만 딱히 부정할만한 근거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를 바다를 통한 가야와 동남아시아와의 교류의 흔적으로 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 제석천의 굴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를 묘사한 간다라의 부조. 아마 나가라하라의 불영굴에 남겨진 설법하는 부처님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셨을 것이다.

여하간 ‘어산불영’ 설화에 의하면 수로왕의 금관가야 국경 지대에 옥지(玉池)가 있었는데, 여기에 사는 독룡(毒龍)이 만어산의 다섯 나찰녀와 만나면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곡식이 익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만어산이 위치한 밀양은 고대에는 금관가야의 영토는 아니었던 것 같고, 미리미동국, 또는 미리벌이라는 소국으로 있다가 신라에 정복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국경 안의 옥지’ 표현은 금관가야의 중심지인 김해와 미리벌, 즉 밀양의 경계 즈음에 있는 연못에 사는 용이 국경 너머 미리벌 만어산 나찰녀와 사귀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그렇다면 꽤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밀양과 김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으니 용이 살았다는 ‘옥지’는 이 낙동강 남쪽 인접한 어디에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수로왕은 이렇게 국경을 초월한 용과 나찰녀의 사랑을 막아보고자 주술을 사용했지만 통하지 않아 결국 부처님을 모셔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나찰녀들은 오계를 받고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나찰녀를 만나러 수시로 들락거리던 용도 제도를 받아 귀의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물고기떼를 거느리고 와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는데 그들이 마침내 돌로 굳어진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하는 이야기다.

이어서 ‘삼국유사’는 북천축 가라국(訶羅國)의 불영, 즉 부처님 그림자에 관해 전해지는 몇 가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마치 ‘어산불영’에 등장하는 용과 나찰녀처럼 인도 아프가니스탄의 나가라하라국에서도 독룡이 나쁜 짓을 많이 하자 그 나라 왕이 특별히 부처님을 청하여 이 용을 제도하였다는 설화이다. 그런데 이렇게 교화를 마치신 부처님이 떠나시려고 하자 착하게 마음을 바꾼 용은 부처님이 떠나시면 다시 나쁜 마음을 먹게 될 것 같아 두려우니 부디 함께 머물러 주십사 청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범천이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분이시므로 용 한 마리를 위하여 한 곳에만 머무르실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부처님 입장에서는 이러한 팬심이 상당히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다. 이 두 청 어느 하나도 뿌리칠 수 없었던 부처님은 결국 용이 살고 있는 굴에 자신의 그림자를 남겨 놓음으로써 모두가 충족할 수 있는 방편을 세우셨다. 부처님은 떠나지만 굴 안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남게 된 것이다. 이를 ‘불영굴’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떠나시면서 “이곳에 1500년을 머물 것이다” 하셨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1500년이 지난 후에는 점차 이 그림자가 희미해져서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지났던 법현 스님이나 현장 스님과 같은 후대의 구법승들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 만어사 미륵전 안에 봉안된 부처바위. 절 앞의 물고기 돌들과 닮았다. 그 정면에 보이는 자연적인 무늬들 속에 다양한 부처님 모습이 숨겨져 있다.

비록 ‘삼국유사’에는 부처님이 밀양 만어산에도 이러한 그림자를 남겨두셨다고 콕 짚어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목인 ‘어산불영’ 즉, ‘만어산의 부처님 그림자’에서만 보더라도 이미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도의 설화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설화가 발생한 인도의 나가라하라국은 한자로 나건가라, 나갈하국, 가라국 등으로 표기되고 있는데 특히 ‘가라국’이라는 이름과 ‘어산불영’의 배경이 되고 있는 ‘가락국’의 이름이 비슷한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거기다 ‘관불삼매해경’에서는 이 굴이 있는 산 이름이 아나사산(阿那斯山)이라고 했는데, 일연 스님은 이 이름도 인도어의 물고기를 뜻하는 ‘마나’가 ‘아나사’로 잘못 전해진 것이어서 원래는 ‘마나산’이며, 이것이 가야에 와서 ‘만어산’이 되었다고 어원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마치 양양 낙산사의 ‘낙산’이 인도 ‘포탈락가’의 한자식 발음인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가락국 수로왕이 독룡을 다스리기 위해 급작스레 부처님을 모셔왔다는 설화는 영화 ‘어벤져스’에서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 등의 히어로들이 악당들과 싸우다가 힘이 부치니 갑자기 수퍼맨을 불러온다고 하는 설정만큼이나 막장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결국 이 설화도 우리나라를 불국토로 만들고자 한 염원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이 부처님 그림자는 불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드리워져 있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 역시 불교의 발상지 인도만큼이나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땅임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의상 스님이 보드가야와 포탈락가산을 우리 땅에 옮겨오셨던 것처럼, 이 설화를 통해 나가라하라의 불영굴을 옮겨온 셈이다.

이 부처님 그림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미디어가 발달한 현재의 시각에서는 단지 그림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사진이나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부처님 그림자는 부처님의 모습을 실제로 친견할 수 있었던 매우 드문 실증자료였다. 이외에 우다야나 왕이 나무를 깎아서 만들도록 한 석가모니상도 있었는데, 이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화가가 직접 스케치해 와서 이를 바탕으로 만든 상이기 때문에 ‘사진(寫眞)’상이라고 불렸다. 지금 우리가 쓰는 ‘사진’과 동일한 개념이다. 수많은 불상이 만들어졌지만, 이 우다야나왕이 만든 ‘사진상’이야말로 진짜 석가모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불상이었던 것이다.

▲ 삼국유사에 의하면 부처님 그림자를 기리기 위해 고려 명종 1180년에 만어사가 세워졌다고 하는데, 보물로 지정된 이 탑이 당시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에 버금가게 중요한 것이 바로 부처님 그림자였다. 비록 그림자이므로 윤곽선에 불과한 모습이었지만, 이러한 그림자는 우다야나왕이 만든 사진상과 차별되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우다야나왕이 만든 불상이 ‘사진’이라면, 부처님 그림자는 ‘동영상’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이 그림자가 공양을 받으면 설법까지 했다고 하니 완전히 부처님 설법 주크박스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만어산 어디에 부처님 그림자가 서려있었을까? 현재 만어사에는 미륵전이란 편액이 달린 중층 형태의 전각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 전각 안에 모셔진 불상은 일반적인 불상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덩어리이다. 만어사 아래로 펼쳐진 돌강에 있는 바위들과 모양은 비슷한데 훨씬 커서 마치 이들 바위들의 우두머리처럼 보인다. 어쩌면 물고기들에게 설법하시기 위해 부처님도 물고기 모습으로 변신하신 것이 아닐까? 그야말로 눈높이 교육이라 하겠다.

그런데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바로 이 바위에 부처님 그림자가 서려있었다고 한다. 마침 지난주 법보신문 삼국유사 성지순례 일환으로 만어사를 찾았을 때, 순례에 동참하신 분들이 이 바위에서 부처님 모습을 찾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보시는 분들마다 서로 다른 부처님을 찾아내어 공유하니 그야말로 십인십색의 부처님 형상이 이 바위에 서려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동영상에 가까운 불영의 설화는 결국 이렇게 보는 시각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부처님 모습을 연결시켜 마치 그림자의 원본인 인도의 부처님이 설법하시거나 움직이시는 것에 따라 만어사 바위에 서린 부처님 그림자 역시 변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물고기의 모습으로 변하셨지만 그 안에 다양한 부처님 그림자를 내포한 바위와 이 바위에 서린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몰려든 용과 엄청난 양의 물고기들이 얼마나 부처님을 바라보며 설법을 듣는 것이 좋았으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다는 설화는 인간이 자연에 어떻게 문화를 덧입힐 수 있는지를 ‘삼국유사’는 보여주고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서는 이 바위들을 두드리면 경쇠소리가 난다고 했는데, 경쇠는 옥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서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나는 의식구 혹은 악기이다. 나가라하라의 불영굴도 돌을 두드리면 그런 맑은 소리가 난다고 했는데, 만어산도 실제 돌을 두드려보면 속이 비어있는 듯 울리는 맑은 소리가 들리니 이 역시 가라국과 가락국이 둘이 아님을 알겠다. 우리나라는 불교 음악을 ‘범패’라고 하고 혹은 ‘어산’이라고도 하니, 만어산의 어산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바위에서 울리는 경쇠소리 역시 음악의 일종으로 간주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만 해본다. 찬하여 말한다.

가락국 만어산의 부처님 그림자/보이나 안보이나 논하지 말라.
돌강에 스며든 설법하는 그 음성/두드리면 낭낭하게 배어있지 않은가.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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