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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지혜

  • 불서
  • 입력 2017.08.14 15:28
  • 수정 2017.08.14 15:29
  • 댓글 2

‘통과 통과 : 예측불허 삶을 건너가는 여유’ / 범일 스님 글·사진 / 불광출판사

▲ ‘통과 통과 : 예측불허 삶을 건너가는 여유’
“어제 연못에 부레옥잠화 일곱 송이가 함께 피었습니다. 아! 예쁘다. 사진을 찍으려다 미루었습니다. 오늘 아침 가보니 다 시들었습니다. 우리 삶도 피었다가 하루 만에 시드는 부레옥잠화처럼 금방 지나가버립니다. 지금 하십시오. 전화도 연락도 만남도 미루지 말고 지금 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버립니다.”

일상이 무심하게 흐르는 듯싶지만, 하루하루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사물과 일에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저 우리가 모른 채 지나칠 뿐이다. 일상을 살피는 관심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질수록 얻어지는 지혜도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양평 화야산 기슭 서종사 범일 스님은 작은 일 하나도 흘려보내는 법이 없다. 비오는 날 풀을 뽑다가도 “가뭄 끝에 숨 좀 돌리는 줄 알았는데 사정없이 뽑히는 풀의 신세”를 떠올리고, 코스모스 지는 꽃잎이 바람이 이끄는 대로 떨어지는 모습에서 “인연 따라 순하게 흘러가는 자세”를 숙고하고, 가만히 있는 거미를 보면서 “고요히 지내는 삶의 이로움”을 깨우친다.

자기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마음을 비우고, 찾아오는 누구라도 환대할 수 있어야 이러한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이 책 ‘통과 통과 : 예측불허 삶을 건너가는 여유’는 범일 스님이 넓고 깊게 일상을 살펴 건져 올린 지혜의 보고다.

“비가 밤새 내리고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법당에 다녀오다가 우산을 쓴 채로 풀을 뽑았습니다. 법당 앞마당이 깔끔해졌습니다. 풀의 입장에 서보았습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목이 탔으니 오랜만에 내린 비가 반갑기 그지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웬걸, 사정없이 뽑히는 신세가 되고 말다니…. 우리 삶에서도 좋음과 나쁨이 어디 서로 떨어져 있던가요.”

▲ ‘통과 통과’는 산사의 고요한 일상에서 보고 듣고 성찰한 삶의 지혜를 짧은 에세이 105편으로 전하고 있다.

책은 이처럼 법당 앞 풀 뽑고, 절 오르내리는 길을 고치고, 방 정리하고, 고양이 밥 주는 산사의 고요한 일상에서 드러나는 담백하고 소탈한 삶의 지혜가 가득하다. 8년 동안 써온 1500여 편 중 정선해서 모은 105편의 글에는 자연의 이치를 삶의 지혜로 전환시키는 수행자의 예리한 선기가 더해졌다.

“아침 햇살이 밝게 산창을 스칩니다. 창밖을 보다 산창에 먼지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먼지가 껴 있습니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마음에 욕심의 때가 낍니다. 걸레를 빨아 산창을 닦으면서 마음도 함께 보았습니다.”

스님은 또 짧은 에세이 전편에서 삶의 지혜로 ‘여유’를 강조하기도 한다. 웬만큼 힘든 일도 다 ‘조아질라고’ 일어난 것이니 맘에 두지 않고 ‘통과’시켜버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스님 이야기를 따라 잠깐 멈추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것은 물론, 천천히 순하게 사는 삶이 갖는 청량한 지혜도 얻을 수 있다. 1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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