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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는 삶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8.14 15:52
  • 수정 2017.08.14 15:55
  • 댓글 2

엊그제 부산에서 포교하며 사는 스님들의 모임인 전법도량모임이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날인데 올해가 10년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매달 만나다보니 그 분들의 한 달간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한 해가 가면 한 해가 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멤버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저마다 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견뎌왔다는 증거입니다. 처음에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공감하고 위로합니다. 그게 큰 힘이 됩니다.

사는 것은 죽어가는 것
육신의 유지가 목표라면
삶에서 실패자가 될 뿐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것

저마다 자기의 삶의 무게를 담아 가는 수레를 끌고 갑니다. 얼마를 실고 가는가는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요구하는 것 같고 어쩔 수 없다고 느꼈었는데 50년을 넘게 끌고 다녀보니 이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내가 꼭 끌고 다녀야 한다는 착각이었고 끌 수 있다는 오만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모두가 자기들의 수레를 가지고 있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괜히 자기 짐도 못 다루면서 남의 짐까지 지려고 했습니다. 내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광복동 거리에는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잘 걸어가고 대화하고 일하고 웃기도 하고 힘들게 걷기도 합니다. 그들이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시 나를 보면 나도 그런 사람들과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나도 어딘가를 향해 보고 생각나면 생각나는 곳을 향해 움직입니다. 길거리에 앉아서 개미들의 행렬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나는 특별하다는 착각에 빠져있었습니다. 나도 그 중에 일부일 뿐입니다. 그들도 저를 보면 어딘가를 향해 지나가고 있는 의식되지 않는 존재, 그저 잠시 지나가는 바람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를 잊지 않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아니 나 자신도 그동안 함께 살아온 나라는 존재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일 때에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육신을 유지하는 것만이 목표라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에서 실패자가 될 뿐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놓아가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스스로가 자유로워지는 과정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되었을 때가 본전이라고 합니다. 이생을 마칠 때에도 손에 뭔가 쥐고 있는 것이 있다면 편안한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 하림 스님
행복공감평생교육원장

 

 

돌아보면 50년을 산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그렇지 못한 인생들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나무가 나이가 들어가면 가지가 줄어듭니다. 이것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나무도 스스로 자신을 성장하게 해 주었던 가지들을 놓아갑니다. 그것이 건강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우리에게 그런 삶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거의 매일 봉사하시러 나오는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빈자리가 매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싫으면서도 자연스럽습니다. 슬픔이 왜 오래가지 않는지 화가 납니다. 그래도 사라져가고 잊혀져 가고 맙니다. 내가 사라진다면 내 주변이 핵폭탄을 맞은 것처럼 모두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압니다. 뒷자리는 그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나의 자리가 아닙니다. 비움의 평화를 만나는 길이 부처님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처님을 만나봅니다.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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