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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수행 김수정-하

기자명 법보신문

▲ 47, 관득성
일기는 아이들과 함께 적었다. 나머지 기도는 다음날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에 했다. 촛불을 밝히고 감사수행 노트에 나와 있는 대로 부처님 전에 예경을 올리고 발원문도 했다. 시간은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 동안 감사수행을 완성하는 기도를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두 아이가 모두 잠자리에 들고 나면 늦은 밤에 수행을 완성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친 뒤 비로소 아이들이 쓴 일기를 보고 사진을 찍어서 홍법사 밴드에 올리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수행을 이어온 지 40일이 넘어선 지금, 짧은 기간이지만 내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자녀들과 함께 감사일기 써
소소한 일상에서 기쁨 느껴
솔직한 아이들 모습에 대견
불교,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처음 시작할 때에는 원하는 것이 참 많았다. 그런데 도반들이 쓴 감사수행 일기를 보고 또 나도 글을 올리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감사하는 것이 하나 둘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들과 그 아이들이 쓴 감사일기를 볼 때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을 때도 많았다. 하루하루 감사수행을 반복하다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피곤할 때도 있고 몸이 좀 아플 때도 있지만 그런 감동 덕분에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감사수행에 몰입한다. 때로는 짜증이 난 상태에서 시작하기도 하지만 마무리 할 때 즈음이면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기쁨이 찾아온다.

큰 아이는 아주 간단하고 간략하게 한 줄 씩 적는다. 그 짧은 글을 통해서도 아이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너무 솔직하게 적는 바람에 웃기도 한다. 좀 잘 써보라고 하니까 이런 것은 솔직하게 적어야 된다며 능청을 떤다. 아이가 참회한 내용을 보면 살짝 걱정이 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적는 모습에 고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감사수행은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다 보니 부담도 없다. 하루 동안 수행을 하는 시간은 모두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형제가 머리를 맞대고 적는 모습을 보면 정말 흐뭇하다. 형식적으로 적는 것이 아니라 짧은 글이지만 하루를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대견하다. 그리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아이의 생활을 알 수도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아이들이 먼저 “무엇보다도 감사수행이니까 솔직해야한다”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오히려 엄마인 나를 가르친다.

수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불안하고 우울할 때도 그 짧은 시간에 기도를 하고 감사하다보면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오고 밝아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꼭 긴 시간 동안 하는 게 아니다보니 오히려 더 꾸준히 할 수 있어서 좋다.

감사수행은 감히 표현하자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수행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엄마와 멀어진다는 사춘기 아들들과도 함께 공유하게 되고 점점 더 가까워지는 큰 선물까지 받았다.

사실 그 전에는 고등학생인 큰 아이가 집에 돌아와서 방에 들어가면 얼굴 볼 시간도 없었다. 감사수행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조잘조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참회할 것을 적으면서 왜 그렇게 했는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낸다. 고3이라 한참 예민할 시기이지만 함께 웃을 일이 더 많아진 우리 가족이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만 해도 입시와 미래에 대한 부담 탓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같지만 지금은 아이 스스로도 지금까지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진짜 감사하다고까지 말한다. 얼마 전 중학생인 작은 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해서 놀라웠다. 진심으로 엄마보다 아이들이 더 어른스럽다는 표현에 공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불교대학을 다닐 때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기독교는 수동적이고 불교는 능동적이라며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 있다 해도 자신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용없다는 말씀이었다. 당시에는 선뜻 와 닿지 않았던 그 말씀을 지금은 온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다. 이제 불교는 나에게 종교라기보다는 숨 쉬는 공기처럼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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