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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지암종욱과 ‘조선불교호’

기자명 이병두

삼보정재로 가공할 살상무기 헌납

▲ 지암의 주도로 불교계가 일제에 헌납한 전투기 ‘조선불교호’.

근대 불교사에 등장하는 유명 인사 중 지암종욱(智庵鍾郁, 이하 지암)처럼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이도 드물다. 3·1민족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참여 등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 받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지만, 나중에 서훈이 취소되는 등 살아서 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것이다.

지암 주도로 전투기 5대 헌납
범종까지 전쟁물품으로 내놔
지암의 ‘위장친일’ 옹호 잘못
과오 인정이 곧 올바른 평가

‘극과 극’ 사이를 오고갔던 지암의 일생은 불교와 관련한 그의 활동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1923년 오대산 월정사의 사채 정리위원으로 얼굴을 드러낸 뒤 해방에 이르기까지 월정사 주지, 31본산 주지협의회 대표, 종회 의장, 종무총장(현재의 총무원장) 등 불교계의 요직을 맡으면서 승승장구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부의장도 역임하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불교계 소임을 맡은 이후에 거의 대부분의 기간을 적극 친일 행위로 일관하여서, 결국 서훈이 취소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그가 본격적인 친일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36년 8월 황민화 정책의 사령탑인 미나미(南次郞) 총독이 부임할 때부터였다. 그는 종회 의장과 월정사 주지 자격으로 불교계 인사들을 대동하고 경성역(서울역)으로 마중을 나가 신임 총독 미나미의 환심을 산 뒤로 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이듬해에는 본사주지회의 의장이 되는 등 불교계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전쟁 발발 1주일 만에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참배하고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원제에 참석하였다. 그 뒤로 전국 사찰에서 같은 내용을 담은 기원 법회와 강연회 개최를 지시하였고, 중국 전선으로 가는 일본군 환송 행사에도 승려들을 이끌고 참석하였다.

1940년 2월, 창씨개명이 시작되자 그는 일본 외무대신 히로다(廣田弘毅)의 성을 따서 히로다 쇼이꾸(廣田鍾郁)로 창씨하였다.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본래 성을 사용하여 ‘김원(金原)’ 또는 ‘김본(金本)’ 등으로 창씨했던 것과 달리 그는 창씨에서도 자신의 친일 정신을 확실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그는 임전(臨戰)대책협의회에 참여하여 길거리에서 전쟁채권을 판매하는 등으로 전쟁 경비 조달에 앞장섰으며, 조선 내 사찰과 승려들에게서 5만3000원을 갹출하여 전투기 1대 구입대금으로 헌납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불교계의 전투기 헌납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 5대에 이르렀다. 전투기의 값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을 터인데, 당시 수많은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실정을 생각하면 그가 주도했던 비행기 헌납 행위는 무슨 이유로도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일본군의 연전연승을 기원하는 법회를 열도록 전국 사찰에 지시하였고, 전쟁 말기에는 전국 사찰의 범종과 쇠로 된 불구(佛具)를 거두어 일제 당국에 헌납하였다.

1943년에 일제가 조선 젊은이들에게도 징병제를 실시하자 그는 감사법요식을 열고 “7000여 승려와 아울러 반도 민중은 검선일여의 정신에 투철하여 용약 군문에 달려가 젊은이의 지성과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라고 역설하였으며, 학병 권유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그에게 현재의 조계사 대웅전을 짓는 총본산 건설 등의 공적이 있으므로 그의 친일 행위를 모른 체 해야 옳다거나 심지어 독립 운동을 감추기 위한 ‘위장 친일’이라는 주장까지 펼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그가 주도해서 헌납한 ‘조선불교호’ 전투기의 총격으로 죽어간 숱한 이들의 목숨을 놓고도 ‘위장 친일’ 운운할 수 있을까. 지암의 한때 공적은 공적대로, 그가 지은 죄는 또 그것대로 인정해야 지암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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